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로비에 설치된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 축구대표팀 사진 앞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스포츠와 정치는 불가분의 관계다. 문화예술 부문과 마찬가지로 ‘지원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강조되는 영역이지만 권력은 항상 스포츠를 가만두지 않는다. 올림픽 헌장에도 스포츠 단체의 자율성 보장을 강조하고 있지만 후진국일수록 잘 지켜지지 않는다.
축구대표팀이 2022 카타르월드컵 16강 진출을 일구자 권력은 전 국민적 감동을 안긴 축구의 힘을 확인했다. 선수단을 청와대 만찬으로 초청해 또 한번 월드컵 이벤트를 활용한 것은 권력이다. 공을 주고받으며 선수들과 어울리는 모습을 누가 탓할 것인가. 하지만 이후 ‘선수 포상금이 적다’고 한 대통령의 발언이 스포츠에 대한 몰이해를 드러내면서 월드컵 16강 진출의 기쁨이 퇴색했다.
말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조심해서 해야 한다. 차라리 잘 모르면 가만있어야 한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월드컵 성적에 따라 차등 지급하는 돈은 영어로 ‘프라이즈 머니’(Prize Money)다. 직역하면 상금이다. 하지만 축구는 골프 등의 개인종목과 다르다. 돈을 수령하는 곳은 각국 축구협회로, 협회가 포상금 규모를 정할 재량이 있다.
축구협회에 따르면 170억원가량의 피파 배당금 가운데, 지원 인력까지 포함한 선수단 포상 규모는 95억원이고, 나머지는 본선 경비 등 관리 비용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누가 돈을 챙겨 가져갈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
선수들의 성취를 포상금 잣대로만 바라보는 것도 문제다. 월드컵에 출전했다는 기록은 영원히 남는다. 선수들은 명예와 인지도 등 무형의 가치뿐만 아니라 유럽 등 더 큰 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태의 자본도 확보하게 된다.
국내 ‘부익부 빈익빈’ 구조가 고착된 프로리그 생태계에서 월드컵 대표선수들은 최상위 0.1%에 해당한다. 이들이 고생한 것은 맞지만, 일반인에게는 큰돈인 수억원의 포상금을 더 늘려야 한다는 발언은 월드컵 성취를 ‘돈 잔치’로 바라보는 것이다.
축구협회가 60개 이상의 대한체육회 가맹 종목단체 가운데 재정 규모가 가장 크고, 자립도도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2020~2021년 A매치를 거의 하지 못했다. 중계권과 관중수입 공백 등으로 300억원가량의 결손이 생겼고, 축구협회 임직원들은 자구책으로 한동안 최고 20%까지 월급 삭감을 감내해야 했다. 이런 가운데 대표팀을 이끈 이 조직의 장을 만찬에 초청하지 않은 것은 축구협회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심도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월드컵 배당금은 선수들을 위해 쓰라는 돈은 아니다. 이들 선수를 키운 한 나라 축구의 토양을 강화하고, 유소년 축구나 좋은 지도자 육성, 시설 확충 등에 사용할 수도 있다. 잘 나가는 선수들과 달리 그늘지고 어두운 데 있는 다수의 선수가 좀 더 안정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재원으로 쓰면 더 좋을 것이다.
대통령의 포상금 관련 발언은 정치와 스포츠의 역관계를 보여준다. 너무 쉽게 말하지만 책임지지는 않는다. 연구가 되지 않는 돌발 발언에 한국 축구의 미래에 대한 것은 없다. 만약 대통령의 참모가 있다면 잘못 조언을 한 셈이다. 깊이가 없는 정치인의 발언은 정말 위험하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