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옥 케이비엘 총재 등이 4월 25일 안양체육관에서 열린 2022~2023 챔피언결정전 1차전 경기를 관전하고 있다. KBL 제공
짧은 입장문 석줄, 과연 최선일까?
한국프로농구 케이비엘(KBL)이 지난 16일 이사회에서 고양 데이원 구단을 제명하기로 결정한 뒤 언론사에 보내온 보도자료를 보면서 든 생각이다. 케이비엘은 이날 팀 운영능력을 상실한 데이원을 회원사에서 퇴출하면서, “인수기업 물색을 포함한 후속 방안을 적극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어 새 주인을 찾지 못할 경우 선수들을 9개 구단에 보내는 특별 드래프트, 허재 데이원 대표에 대한 책임 추궁 계획 등을 공표했다. 맨 마지막에는 김희옥 케이비엘 총재의 입장이 추가됐다.
김 총재는 입장문에서 “이런 상황을 맞게 돼 매우 안타깝고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모든 농구 팬들과 관계인들에게도 유감스럽고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리그의 안정성과 내실을 다지는 데 더욱 정진하고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그런데 김 총재의 말이 마치 남 얘기하듯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농구 관계자는 “책임을 통감한다거나, 사죄한다는 말이 나올 줄 알았다. 화법이 너무 실망스럽다”고 했다.
어휘나 문장을 분석하면 그 말이 틀리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안타깝다”라는 단어는 주체가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에서의 느낌을 드러내는 것이고, “유감스럽다”라는 표현에도 사안을 에둘러 바라보는 태도가 들어 있다. “~라고 생각한다”는 표현도 유보적인 것이다. 입장문이라는 형식도 사과문과는 달라서 책임이나 반성이 들어갈 여지가 없다.
이런 자세는 다른 곳에서도 드러난다. 케이비엘은 7월21일까지 새 주인을 찾지 못하면 선수들을 특별 드래프트하겠다고 했는데, 이는 ‘9개 구단 체제’를 전제로 하는 얘기다.
프로농구에서는 과거 나산 플레망스가 해체되면서 골드뱅크 클리커스로, 이어 케이티에프(KTF)로 팀 주인이 바뀐 적이 있다. 당시 케이비엘은 뼈를 깎는 노력으로 10구단 유지라는 절대가치를 지켰다. 9개 구단 체제로 갈 수 있다는 발상을 너무 쉽게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케이비엘은 백방으로 뛰며 자격을 잃은 데이원 구단을 인수할 기업을 찾고 있다. 현재까지 50대 50의 성공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만약 시즌 개막전까지 구단을 찾지 못한다면, 정말 9구단 체제로 갈 것인가. 팬들은 케이비엘과 9개 구단이 협력해서 10개 구단 체제를 유지하길 바라고 있고, 그런 의지를 보이길 기대하고 있다.
데이원 구단을 이끌었던 허재 대표는 후배들이나 농구계에 볼 낯이 없어졌다. 하지만 허재 대표에게만 행정적 법률적 책임을 묻겠다고 해서 케이비엘 집행부의 책임이 가려지는 것도 아니다.
프로농구는 1997년 출범 이후 프로 스포츠의 개념을 바꾼 전통의 종목이다. 초창기 설계자들은 엔비에이(NBA)를 모델로 삼으면서 경기 룰, 관전 환경, 연고지 개념 정착, 팬 서비스 등에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다. 지금은 과거보다 인기가 떨어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괜찮은 콘텐츠라는 인식을 많은 전문가가 갖고 있다. 9개 구단으로 줄어들면 경기 수 축소, 플레이오프 제도 변경, 중계권 계약 등 케이비엘 근간이 타격을 입게 된다.
이번 사태에는 부실기업을 상대로 팀을 넘긴 오리온과 이사회 결정으로 데이원을 받아들인 케이비엘, 그리고 재정여력도 없으면서 농구단을 인수한 데이원 모두에게 공동의 책임이 있다. 그리고 그 정점에 총재가 있다. 하지만 석줄의 입장문에는 팀 축소 위기 상황에 대한 인식이 절실해 보이지 않는다. 회원사가 순번제로 총재를 맡도록 하는 현행 제도의 개선을 비롯해 전문성을 갖춘 내부 인적자원의 보호와 육성, 타이틀 스폰서와 중계권 등에 대한 공격적 접근 등 혁신 요구가 나오는 이유다.
김창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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