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스포츠 스포츠일반

KCC 이전에서 드러난 스포츠 팬들의 권리박탈 [김창금의 무회전 킥]

등록 2023-09-07 16:49수정 2023-09-08 02:32

지난 4월7일 전주체육관을 가득 메운 케이씨씨(KCC) 팬들이 서울 에스케이(SK)와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을 지켜보고 있다. KBL 제공
지난 4월7일 전주체육관을 가득 메운 케이씨씨(KCC) 팬들이 서울 에스케이(SK)와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을 지켜보고 있다. KBL 제공

“당신들이 무능한 걸 왜 기업 탓을 해요? 정말 반성하고 사과해도 모자라는데 매번 남 탓만 하고, 양심은 어디 있나요?”

7일 전주시청 누리집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전주시의 헛발질’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프로농구 케이씨씨(KCC) 팬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투에서 시 당국에 대한 분노가 느껴진다.

지난달 30일 케이씨씨 구단이 부산으로 연고지를 이전하겠다고 발표한 뒤 전주시청 게시판에는 일주일이 넘도록 팬들의 ‘충격’과 ‘허탈감’이 표출되고 있다. ‘떠난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달리 하소연할 데 없는 ‘민초’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전주시가 두 차례에 걸쳐 입장문(8월30일)과 ‘KCC이지스 연고지 이전 관련 오해와 진실’(9월1일) 등을 발표했지만, 팬들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만큼 팬들의 상실감은 크다.

입장문을 보면 잘못은 케이씨씨에만 있는 것으로 돼 있다. 시는 “졸속”, “일방적”, “어처구니가 없다”, “눈앞의 이익”, “군사작전”, “우롱” 등의 용어를 동원해 케이씨씨를 비난하는 등 화살을 외부로 돌렸다. 첫 문장의 “사과한다”는 것이 자기반성의 전부다.

두 번째 낸 카드뉴스 형식의 ‘오해와 진실’도 마찬가지다. 아예 프레임을 ‘진실공방’으로 바꿔 버렸다. 시는 체육관 신축이 늦어진 이유, ‘케이씨씨가 직접 지으라’고 느꼈던 압박의 진위, 현 체육관 사용 연장 결정, 농구 홀대설 등에 관해 설명한 뒤 케이씨씨의 이전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식으로 끝맺었다.

전주시청 누리집에 올라온 KCC 이전 관련 ‘오해와 진실’.
전주시청 누리집에 올라온 KCC 이전 관련 ‘오해와 진실’.

한쪽이 100% 잘못하고, 다른 한쪽이 다 잘한 경우는 없다. 시설을 가진 지자체는 프로 스포츠 구단의 유치를 위한 협상력을 갖고 있다. 구단을 붙잡아두느냐의 문제는 지자체의 전략적 판단과 각종 유인책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도 남 탓만 한다.

전주시는 케이씨씨가 2001년 연고를 튼 뒤, 거의 20년간 새 체육관을 지어주겠다는 희망을 주었다. 2004년 당시 시장 때부터 “엔비에이(NBA·미국프로농구)급 체육관을 신축하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올해 50년 된 체육관은 냉·난방에 어려움이 있고, 좌석도 비좁아 개선이 필요했다. 하지만 최근까지 전주시는 구단에 신뢰를 주지 못했다.

한국의 프로구단은 흑자를 내지 못한다. 기업구단의 경우 계열사 광고후원을 통해 재원을 충당하는데, 중계권이나 입장료·상품화 사업 등 시장을 통해 자생하는 구조가 아니다. 사회공헌 성격이 있지만 비즈니스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 구단이 체육관마저 직접 지어야 한다고 압박감을 받았다면 떠날 수 있다.

수익과는 상관없이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이나 복지가 목적인 지자체는 다르다. 인구 65만의 중급 도시에서는 체육관의 ‘함성’과 ‘열기’가 시민 행복의 단면으로 비칠 수 있다. 더욱이 케이씨씨는 2015~2016 시즌 13만3천여명으로 최다 관중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2년간 매 경기 체육관을 가득 채우며 명가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왔던 전주 시민들이 이전 결정에 괴로워하는 이유다.

민주주의는 최상의 제도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투표로 뽑은 대리인이 시민을 위한 판단을 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전주 시민들은 케이씨씨 농구를 삶의 일부로, 지역의 자부심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주인인 시민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다. 전주시장은 떠난 구단을 비판하기 전에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스포츠 많이 보는 기사

여자축구 원정 친선경기, 월드컵 우승팀 스페인에 0-5 대패 1.

여자축구 원정 친선경기, 월드컵 우승팀 스페인에 0-5 대패

[포토] 포항, 2024 하나은행 코리아컵 우승…3-1 역전승 2.

[포토] 포항, 2024 하나은행 코리아컵 우승…3-1 역전승

K리그 승강 PO 관심 뜨겁네…서울 이랜드-전북 현대전 10분 만에 매진 3.

K리그 승강 PO 관심 뜨겁네…서울 이랜드-전북 현대전 10분 만에 매진

‘감독 데뷔전’서 쓴맛 김태술 감독…“그래도 즐겁게 했다” 4.

‘감독 데뷔전’서 쓴맛 김태술 감독…“그래도 즐겁게 했다”

오타니 50-50 홈런공, 역대 최고 61억원에 낙찰 5.

오타니 50-50 홈런공, 역대 최고 61억원에 낙찰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