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7일 전주체육관을 가득 메운 케이씨씨(KCC) 팬들이 서울 에스케이(SK)와 6강 플레이오프 3차전을 지켜보고 있다. KBL 제공
“당신들이 무능한 걸 왜 기업 탓을 해요? 정말 반성하고 사과해도 모자라는데 매번 남 탓만 하고, 양심은 어디 있나요?”
7일 전주시청 누리집 자유게시판에 올라온 ‘전주시의 헛발질’이라는 제목의 글이다. 프로농구 케이씨씨(KCC) 팬이 작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투에서 시 당국에 대한 분노가 느껴진다.
지난달 30일 케이씨씨 구단이 부산으로 연고지를 이전하겠다고 발표한 뒤 전주시청 게시판에는 일주일이 넘도록 팬들의 ‘충격’과 ‘허탈감’이 표출되고 있다. ‘떠난 버스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달리 하소연할 데 없는 ‘민초’의 처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전주시가 두 차례에 걸쳐 입장문(8월30일)과 ‘KCC이지스 연고지 이전 관련 오해와 진실’(9월1일) 등을 발표했지만, 팬들의 반발은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그만큼 팬들의 상실감은 크다.
입장문을 보면 잘못은 케이씨씨에만 있는 것으로 돼 있다. 시는 “졸속”, “일방적”, “어처구니가 없다”, “눈앞의 이익”, “군사작전”, “우롱” 등의 용어를 동원해 케이씨씨를 비난하는 등 화살을 외부로 돌렸다. 첫 문장의 “사과한다”는 것이 자기반성의 전부다.
두 번째 낸 카드뉴스 형식의 ‘오해와 진실’도 마찬가지다. 아예 프레임을 ‘진실공방’으로 바꿔 버렸다. 시는 체육관 신축이 늦어진 이유, ‘케이씨씨가 직접 지으라’고 느꼈던 압박의 진위, 현 체육관 사용 연장 결정, 농구 홀대설 등에 관해 설명한 뒤 케이씨씨의 이전의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는 식으로 끝맺었다.
전주시청 누리집에 올라온 KCC 이전 관련 ‘오해와 진실’.
한쪽이 100% 잘못하고, 다른 한쪽이 다 잘한 경우는 없다. 시설을 가진 지자체는 프로 스포츠 구단의 유치를 위한 협상력을 갖고 있다. 구단을 붙잡아두느냐의 문제는 지자체의 전략적 판단과 각종 유인책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도 남 탓만 한다.
전주시는 케이씨씨가 2001년 연고를 튼 뒤, 거의 20년간 새 체육관을 지어주겠다는 희망을 주었다. 2004년 당시 시장 때부터 “엔비에이(NBA·미국프로농구)급 체육관을 신축하겠다”는 얘기가 나왔다. 올해 50년 된 체육관은 냉·난방에 어려움이 있고, 좌석도 비좁아 개선이 필요했다. 하지만 최근까지 전주시는 구단에 신뢰를 주지 못했다.
한국의 프로구단은 흑자를 내지 못한다. 기업구단의 경우 계열사 광고후원을 통해 재원을 충당하는데, 중계권이나 입장료·상품화 사업 등 시장을 통해 자생하는 구조가 아니다. 사회공헌 성격이 있지만 비즈니스적 요소에 영향을 받는 구단이 체육관마저 직접 지어야 한다고 압박감을 받았다면 떠날 수 있다.
수익과는 상관없이 시민의 삶의 질 향상이나 복지가 목적인 지자체는 다르다. 인구 65만의 중급 도시에서는 체육관의 ‘함성’과 ‘열기’가 시민 행복의 단면으로 비칠 수 있다. 더욱이 케이씨씨는 2015~2016 시즌 13만3천여명으로 최다 관중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22년간 매 경기 체육관을 가득 채우며 명가의 역사를 함께 만들어왔던 전주 시민들이 이전 결정에 괴로워하는 이유다.
민주주의는 최상의 제도처럼 여겨지고 있지만, 투표로 뽑은 대리인이 시민을 위한 판단을 할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전주 시민들은 케이씨씨 농구를 삶의 일부로, 지역의 자부심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정작 주인인 시민은 아무것도 결정할 수 없었다. 전주시장은 떠난 구단을 비판하기 전에 시민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해야 한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