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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구장 알바하며 독학한 임혜원, “손님들이 스승이었다”

등록 2023-12-01 07:00수정 2023-12-01 08:26

LPBA 하이원리조트배 괴력의 준우승
당구장 손님들과 대결 야전서 성장
“많은 여성분들 도전하면 좋겠다”
20살 때 큐를 잡은 임혜원이 29일 강원도 정선에서 열린 2023~2024 프로당구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집중하고 있다. PBA 제공
20살 때 큐를 잡은 임혜원이 29일 강원도 정선에서 열린 2023~2024 프로당구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집중하고 있다. PBA 제공

“저도 했잖아요. 많은 분이 도전하면 좋겠어요.”

여자프로당구 엘피비에이(LPBA)의 ‘독학파’ 강자 임혜원(27)은 결승전 패배에도 발랄했다. 우승컵을 놓쳐 아쉬움은 남지만, “이제 잠 실컷 잘 수 있게 됐다”며 웃었다. 데뷔 2년 만에, 그것도 홀로서기로 정상 문턱까지 온 자신이 대견할 만도 하다.

29일 강원도 정선 하이원리조트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2023~2024 피비에이(PBA)-엘피비에이(LPBA) 7차 투어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의 우승자는 일본의 사카이 아야코(하나카드)였다. 하지만 한국 여자프로당구는 준우승한 임혜원을 주인공으로 기억할 것 같다.

지난 시즌 프로에 데뷔한 임혜원은 말 그대로 무명에 가까운 선수다. 20살 때 포켓볼을 치며 당구의 재미에 빠진 그는 4구 당구에 이어 4~5년 전부터 스리쿠션에 입문했다. 프로 성적도 지난 시즌 하이원리조트 대회 17위가 최고였고, 이번에 처음 결승에 올랐다.

이날 결승전(7전4선승제)에서 그는 첫 세트를 따내며 기대감을 부풀렸지만, 2~5세트를 내주면서 정상 문턱에서 멈췄다. 한 큐의 성공률인 애버리지(0.532)는 사카이(0.813)에 뒤졌다. 그는 경기 뒤 “기본기나 시스템에서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앞으로 더 섬세하게 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임혜원이 29일 강원도 정선에서 열린 2023~2024 프로당구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PBA 제공
임혜원이 29일 강원도 정선에서 열린 2023~2024 프로당구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 결승전에서 생각에 잠겨있다. PBA 제공

주눅 들 이유가 없는 것은 잃은 것도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호된 결승전 무대 신고식은 더 큰 분발을 자극하고 있다. 그는 “너무 긴장해서 공의 두께나 스피드 조절에서 실수가 나왔다. 방송으로 경기가 중계되면서 많이 떨었다. 하지만 다음엔 오늘처럼 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임혜원의 깜짝 등장은 한국 여자프로당구의 현실과 함께 가능성을 보여준다. 현재 여자프로당구 선수는 160명 정도이다. 이 가운데는 어려서부터 전문선수의 길에 접어들지 않고, 임혜원처럼 성년이 돼 당구를 접하고 프로리그에 진입한 선수가 꽤 된다. 지난 대회에 우승한 최혜미(웰컴저축은행)도 늦깎이 선수다.

임혜원이 29일 열린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 결승에서 타격하고 있다. PBA 제공
임혜원이 29일 열린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 결승에서 타격하고 있다. PBA 제공

당구장에서 ‘알바’를 하면서 손님들과 12시간 넘게 대결하며 실전형으로 성장한 임혜원은 프로선수인 이충복(하이원리조트) 등에게 짧게 레슨을 받은 게 정식 수업의 전부다. 서울 은평구에 사는 임혜원은 고정된 훈련장도 없다. 대신 수준급 기량의 남자친구가 코치 겸 훈련 파트너가 돼 주었다. 그는 “친구와 함께 이곳저곳 당구장을 돌아다니면서 연습했다”고 설명했다. 당구 외에도 카페 알바 등 투잡을 뛰기 때문에 이번 대회를 앞두고 충분히 훈련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야전에서 단련된 맹독성 잡초의 승부욕으로 이번 대회에서 스롱 피아비(블루원리조트), 히가시우치 나쓰미(웰컴저축은행), 김보미(농협카드) 등 간판스타를 제압했다. 임혜원은 “아직은 여자프로선수들의 층이 두텁지 않다. 저 같은 선수도 결승까지 올라왔으니 다들 희망을 가져도 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한 임혜원(왼쪽)과 우승자 사카이 아나코. PBA 제공
하이원리조트 챔피언십에서 준우승한 임혜원(왼쪽)과 우승자 사카이 아나코. PBA 제공

이번 대회에선 운도 따랐다. 동호인 대회에서 3차례 우승했던 그는 “아직도 프로무대에서 배울 게 많고 (특급선수와) 격차는 큰 게 분명하다. 또 이번엔 내게 행운이 많이 따랐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프로 무대가 높은 순위의 선수들만 경쟁할 수 있는 곳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이런 자신감은 무엇보다 큰 수확이다. 임혜원은 “이번 대회를 통해 ‘내가 여기까지 갈 수 있구나. 진짜 선수가 됐다’라는 생각을 했다. 이제는 직업적인 선수로 당구에만 올인하고 싶다”고 말했다. 또 “감에 의존하던 당구에서 벗어나 기본기와 시스템을 보완하겠다”며 개선해야 할 과제를 제시했다. 좀 더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당구 수업을 받기 위해 코치진도 찾아봐야 한다.

임혜원은 “처음엔 부모님도 당구 선수의 길을 가는 것에 반대했지만 지금은 적극적으로 격려해 준다. 할머니와 동생을 위해서라도 꼭 우승하고 싶다. 팬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도록 더 열심히 연습하겠다”고 약속했다. 엘리트 코스와는 다른 길을 통해 기존의 정형화된 틀을 깬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정선/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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