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에 미친 사람들이 있다. 봉신클럽의 선수들을 보면 그렇다. 지난 1월 김포의 한 축구팀과 경기를 마친 뒤 선수와 감독들이 모였다. 뒷줄 오른쪽 끝이 현영진 감독
직원들 모아 팀 만든지 18년
프로팀 상대 첫 골 “평생 잊지못할 추억”
프로팀 상대 첫 골 “평생 잊지못할 추억”
사내 축구동호회 ‘봉신클럽’
축구 선수가 골을 넣었다. 그리고 “평생 잊지 못할 추억으로 간직할 것”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골을 넣은 선수뿐 아니라 모두 그 한 골에 환호했다. 경기엔 졌으나 그들에겐 이긴 것만큼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순수 아마추어 직장 축구 동호팀이 프로팀에 ‘천금 같은’ 한 골을 빼앗아 낸 것이다.
봉신클럽은 인천 서구 가좌동 한국수출5공단에 있는 기계기구 제조업체 ㈜봉신의 직원들로 꾸려진 축구 동호회다. 이들이 19일 경남 창원종합경기장에서 열린 2006 하나은행 축구협회(FA)컵 본선(32강)에서 프로축구 K리그 경남FC에 1―2로 졌다. 비록 프로팀을 잡는 ‘파란’을 일으키지는 못했지만, 한 골을 성공시킨 것이다. 0―2로 뒤지며 패색이 짙던 후반 35분 왼쪽 수비수 천정민(25)이 머리받기로 상대 골망을 흔들었다. 프로팀을 상대로 따낸 첫 골. ‘밥벌이’가 아닌 오로지 축구가 좋아서 시작한 이들이기에 프로팀을 상대로 골을 기록했다는 건 일대 사건이다. 2003년과 2004년 이 대회에서 수원시청과 국민은행에 0―3, 0―4로 완패를 당한 기억은 이제 옛날이야기다.
봉신클럽은 1988년 12월 지금의 현영진(49) 감독이 축구를 좋아하는 사원들을 모아 만들었다. 입사 2년차였던 현 감독과 중고등학교 선수 출신 사원들이 주축이 됐다. “관리직과 생산직 사원들이 경기를 했는데, ‘이 정도면 팀을 하나 꾸려도 되겠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사내 축구팀이 없었거든요.” 그렇게 팀을 만든 뒤 선수 출신 후배들을 하나둘 회사로 데리고 왔다.
그래도 이젠 제법 축구를 할 만한 여건이 마련됐다.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이 축구가 웬말이냐?”며 핀잔을 주던 때가 엊그제 같다. “처음엔 가족이나 동료들이 이해를 못했죠. 그러다 한두번 이기기 시작하니까 달라지던데요. 요즘엔 ‘가서 연습하라’는 얘길 먼저 해요.” 주눅들어 있던 선수들도 큰 경기를 치르면서 자신감을 찾았다.
경기가 열린 19일. 선수단 전원이 월차를 내고 아침 일찍 출발해 6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 창원에 도착했다. 첫 골의 기쁨을 누릴 겨를도 없이 경기가 끝나자마자 다시 인천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 출근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치지 않고선 이럴 수 있겠냐”는 현 감독의 말도 과장이 아니다. “올라올 땐 괜찮았는데 오늘 회사에서 보니 다들 피곤해 죽겠다고 하더군요.” 피곤하긴 현 감독도 마찬가지다. 회사에선 ‘현 차장님’으로 돌아와 사원들 건강관리도 해야 한다.
현 감독은 “다시 못 올 기회라 생각하고 다들 열심히 한 것”이라며 “이긴다는 건 생각지도 않았다”고 했다. 그들이 꿈꿔온 첫 승의 꿈은 다음 기회로 미뤄졌지만 아무도 실망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누가 시킨 것도, 누굴 위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봉신클럽의 첫 승이 언제쯤 이뤄질지 알 수 없지만 그들은 공을 차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축구를 하는 그 시간만큼은 평생 잊지 못할 순간들이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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