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 김경문 감독은 쫓기는 듯 했다. “1차전에 모든 걸 쏟겠다”는 경기 전 그의 각오는 허투루 내뱉은 소리가 아니었다. 하룻밤 사이 순위가 바뀌는 치열한 4위 쟁탈전. 전날(16일) 패배로 0.5경기차 5위로 내려앉은 두산에게 연속경기 1차전은 1경기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더욱이 2차전 선발은 전날 오후 미국에서 날아온 리오스가 예정돼 있었다. 그의 몸상태를 장담할 수 없었다.
선수들의 마음도 감독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방망이는 마음처럼 돌아가지 않았다. 기아 선발 그레이싱어는 상대의 이런 성급함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전날 4안타(2득점)에 허덕인 두산 타자들은 야간 경기 뒤 ‘시차적응’에 실패한 듯 무기력한 스윙으로 9이닝 동안 2개의 안타밖에 뽑지 못하며 0-5 완봉패를 당했다.
팀 승리 못지않게 자신의 1승에 목마른 두산 선발 김명제가 버티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4회까지 무실점으로 막은 김명제는 5회초 1사 후 이용규를 몸에 맞는 공으로 내보내며 흔들리기 시작했다. 기아 이용규는 김명제의 미세한 흔들림을 놓치지 않고, 2루를 훔쳤고, 김명제는 2사 후 볼넷과 더블스틸을 허용하며 2·3루의 위기를 자초했다. 기아는 이 찬스에서 이현곤의 내야안타와 이종범의 2타점 2루타로 3점을 뽑아내 승기를 잡았다.
그레이싱어는 7이닝 2안타로 호투하며 팀에게 소중한 1승을 안겼고 타격부진으로 8월 한달간 2군에 머물렀던 기아 주장 이종범은 4타수 3안타 3타점을 올리며 큰 경기에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두산 김명제는 올 시즌 승리없이 11패째를 당했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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