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수씨(왼쪽)가 한 방송사의 현장 일일 체험 프로그램에 출연한 탤런트 박윤배씨와 함께 모래판을 정리하고 있다. 한국씨름연맹 제공
밀대 잡고 8년째 큰 대회 쫓는 농사꾼 이은수씨
그는 씨름 한판이 끝나면 ‘밀대’를 들고 비로소 모래판에 짧게 등장한다. 움푹 파인 모래를 잽싸게 정리한 뒤 서둘러 퇴장.
강원도 양구 ‘제4땅굴’ 근처에 사는 농사꾼 이은수(31)씨. 중학교 때 어머니를 잃은 그는 농업고등학교를 나와 20대 초반부터 5000여평의 벼농사를 짓고 있다. 소도 2마리를 키운다. 그런 그가 농번기에도 열 일 제치고 가는 곳이 민속씨름 대회장이다. 24살 때 선배의 권유로 모래판 밀대를 잡은 그는 씨름이 좋아 이 일을 자청해 8년째 해오고 있다. 모래판 설치 등 잡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대회에 한번 가면 보통 일주일 정도는 집을 비운다. “뒤집기 같은 씨름의 멋진 기술을 가까이서 보니 얼마나 즐겁습니까?”
모래판 정리도 요령이 있을 터. “모래가 중심부에서 바깥으로 밀리기 때문에 안쪽으로 긁어들어와야 합니다. 아무래도 백두급 장사들이 쓰러지면 모래가 크게 파입니다. 2분 동안 승부가 나지 않고 끝날 때도 정리하기가 힘든 편이에요. 샅바를 잡고 모래판 전체를 휘젓고 다니기 때문이죠.”
예전 같지 않은 씨름의 인기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도 무겁다. “한창때는 1년에 10개 대회 정도 따라다녔어요. 요즘은 대회가 별로 없어서…. 일을 처음 할 때는 바닥까지 사람이 꽉 찼고, 들여보내달라고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분들도 많았죠. 프로팀들이 더 생겨났으면 좋겠어요.”
추석대회 때 부산을 다녀온 그는 17일부터 경북 영천에서 열리는 ‘올스타 씨름대회’에서도 밀대를 집어든다. ‘언제까지 이 일을 할 거냐’고 묻자 “밀대를 들지 못할 때까지 하겠다”며 껄껄 웃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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