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대만과의 경기에서 언니 한유미(오른쪽)가 동생 송이와 교체돼 투입되고 있다. 도하/이정용 기자 lee312@hani.co.kr
여자배구 한유미·송이 자매 ‘왼쪽공격의 핵’ 엇갈리기 출전
언니가 12번이 적힌 흰색 푯말을 들고 코트 밖에 선다. 동생을 불러내고 언니가 들어가겠다는 신호다.
여자배구대표팀에서 똑같이 왼쪽공격수를 맡아 동시에 코트에 설 수 없는 자매. 그래서 언니가 뛰려면 동생이 나와 줘야 한다. 콧등 왼쪽에 찍힌 점까지 같은 한유미(24·현대건설)와 한송이(22·도로공사). 미녀 배구스타로 불리는 그들은 한국여자배구 사상 첫 자매 국가대표다.
지난달 30일 열린 도하아시아경기대회 한국과 대만의 여자배구 A조 1차전. 동생 송이는 조용한 성격이지만, 코트에서는 1m85의 장신을 이용한 공격이 매섭다. 이날 11점을 올려 한국의 3-2 역전승을 도왔다. 동생보다 6㎝가 작은 언니 유미는 코에 액세서리를 박았다. 그는 “4월에 했나? 제가 피어싱을 좋아하거든요”라며 깔깔 웃었다. 한때 레게머리로 코트에 나서는 파격도 감행했다. 레게머리를 벗어던졌지만 그는 따분해보이는 검은 색 머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한유미는 왼무릎이 좋지 않아 이날 많은 기회를 동생에게 양보했다. “우리 언니 되게 잘해요. 아프지 않으면 더 많이 뛸 텐데….” 동생의 말에 언니는 “어제까지도 운동 못하고 쉬었어요. 감독님이 갑자기 들어가라고 해서 어찌나 감을 못잡겠는지…”라며 장난스럽게 얘기한다. 동생은 이런 활달한 언니의 성격이 부럽다.
언니가 멋있어 초등학교 4학년 때 배구를 따라한 한송이는 언니가 걸어간 학교를 그대로 쫓아다녔다. 실업팀은 갈렸지만 동생은 언니가 2000년 탄 신인왕을 3년 뒤에 가져갔다. 한유미는 “어렸을 때 싸우면 제가 힘으로 이겼는데요. 송이가 중학교 3학년 때 내 키를 넘어섰거든요. 힘도 진짜 세요!”라고 말한다. 힘이 실린 스파이크는 다른 팀들도 탐내는 동생의 강점이다. 결국 동생 자랑이다. 한송이는 “언니가 친구 같다”며 고마워한다.
지난달 세계여자배구선수권에서 17년 만에 진 대만에 설욕한 한국은 최소 조 2위가 유력해 8강에서 A조 하위팀과 맞붙을 가능성이 커졌다. 결승까지 진출해 최강 중국과 맞붙어 보겠다는 목표에 한발 더 다가섰다. 메달을 딴다면 그들은 배구사에 ‘자매 첫 메달’이라는 기록을 남긴다.
팬이 누가 더 많냐고 물었다. 동생의 말을 가로챈 건 언니다. “요즘엔 동생이 더 많아요. 전 옛날 팬들이죠.” ‘코트의 패션모델’ 한유미의 사진을 인터넷에서 퍼나르는 팬들이 꽤 되는데도 언니는 끝내 동생을 앞세운다.
도하/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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