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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 300원짜리 몸뚱이로 ‘후끈’ 달군 겨울

등록 2006-12-17 22:27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선수들이 15일 오후 대전시 동구 중앙동의 한 독거노인집을 방문해 연탄을 나르고 있다. 왼쪽부터 송진우, 이도형, 문동환, 이범호, 김태균, 류현진. 사진 한화 이글스 제공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선수들이 15일 오후 대전시 동구 중앙동의 한 독거노인집을 방문해 연탄을 나르고 있다. 왼쪽부터 송진우, 이도형, 문동환, 이범호, 김태균, 류현진. 사진 한화 이글스 제공
프로야구 한화선수단 달동네서 ‘연탄 나르기’
저는 22개의 구멍을 가진 연탄입니다. 대전시내 국민기초생활수급권자 세대 중 저를 사용하는 곳은 모두 618여 가구. 그 중 258가구가 동구에 모여 있습니다. 대전에서 가장 열악한 지역이라 할 수 있지요. 저는 아침부터 동구 중앙동에서 저를 할머니 할아버지가 사시는 곳 창고로 옮겨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기 빨간 옷을 입은 한무리의 사람들이 보입니다. 한눈에 봐도 운동선수들 같습니다.

빨간 옷에 빨간 장갑을 낀 한 선수가 허리를 굽혀 저와 제 동료를 한꺼번에 잡습니다. 그를 기억합니다. 그를 마지막으로 본 것은 그가 중학교 2학년 때 되던 해였습니다. 추운 날 언 손을 비며가면서 행여 불이 꺼졌을까 싶어 빤히 저의 집(보일러)을 들여다보던 소년은 안 보던 사이에 프로야구 무대에서 201승이나 올렸더군요. “풍로에서 숯을 꺼내 마루 난로에 넣고 고구마·감자를 구워먹었는데….” 송진우 선수가 추억을 끄집어 냅니다.

다른 손으로 옮겨집니다. 이 손도 기억합니다. 공장에서 막 나와 가정 집 창고로 들어갈 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고사리 손으로 “하나, 둘, 셋” 저를 세던 손입니다. 어느 날은 소화불량으로 나온 제 가스가 너무 세서 병원으로 실려가기도 했지요. “가스를 마실 때면 할머니가 동치미 같은 것을 주셨는데….” 그의 얼굴에 할머니 모습이 잠시 스쳐갑니다. 그러더니 한마디 더 합니다. “내 전문분야는 어르신들과 민화투를 치면서 같이 놀아주는 것인데 배달은 내 전문이 아니라니까.”

언손 불며 고구마 구워먹던 송진우
가스 질식 기억 ‘아찔’한 문동환
구멍 갯수도 모르는 3관왕 류현진
억대 ‘귀한몸’ 놀려 3천장 날라

사진 한화 이글스 제공
사진 한화 이글스 제공
문동환 선수의 손을 거치니 아직도 솜털이 뽀송뽀송한 소년이 있습니다. 올해 투수 3관왕(다승·탈삼진·평균자책)에 올라 시즌 최우수 선수상과 신인상, 그리고 골든글러브를 땄다고 합니다. 누군가 묻습니다. “(류)현진아, 너 연탄 구멍이 몇개인지 아니?” 소년은 미처 연탄을 보지 못하고 “7개던가, 9개던가?” 대꾸하며 고개를 갸웃합니다. 하긴, 전 소년을 지금껏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습니다. 소년은 번개탄의 용도에 대해 “고기 구워먹을 때 쓰는 것”이라고 자신있게 말합니다.

제 몸값은 300원입니다. 이것은 공장도 가격이고 소매상에서는 배달료까지 붙어 330원에서 350원까지 가격이 오릅니다. 오늘 제 몸을 만진 선수들의 ‘몸값’은 많게는 3억원, 적게는 2000만원이라고 합니다. 300원짜리 주제에 참 비싼 노동력을 샀습니다. 그래도 고맙습니다. 당신들 몸도 불편하신 할아버지, 할머니가 직접 저를 날랐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김 아무개(63) 할머니가 수술한 왼무릎을 토닥거리며 웃으십니다. “올해도 겨울걱정은 끝이네.”

생활이 점점 어려워지나 봅니다. 지난해보다 저를 필요로 하는 가구가 더 늘었으니 말입니다. 오늘도 한 할아버지가 사회복지사에게 연탄보일러로 바꿔야겠다고 합니다. 기름값이 너무 비싸서요. 한 선수가 말합니다. “할아버지, 연탄 걱정은 마시고 바꾸세요.” 내년에는 빨간 옷의 선수들이 이 할아버지의 집에 저를 배달할 지도 모르겠네요.

한화 선수단은 지난 15일 오후 ‘나눔의 마을’ 대학생 자원봉사자 10여명과 함께 2시간 동안 3천장의 연탄을 배달했다. 한화 선수단이 올해 독거노인들을 위해 기증한 연탄수는 총 3만장이며, 내년에도 계속 연탄배달행사를 이어갈 계획이다.


대전/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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