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는 종종 친구와 함께 찍은 스티커 사진을 미니홈피에 올린다. 소년은 시도 때도 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친구와 문자메시지를 주고받는다. 그들은 전형적인 한국의 10대다.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면 베테랑 못지 않게 승부욕 강한 스포츠 선수로 변신한다. ‘국민 여동생’ 김연아(17·군포수리고1)와 ‘국민 남동생’ 박태환(18·경기고2). 그들에게 2007년은 새로운 도전의 해다. 둘의 2007년을 키워드로 살펴본다.
김연아
1월 겨울아시아경기대회, 3월 세계피겨선수권 등
두달새 잇단 국제대회…떨어진 체력 회복 급선무
아사다 마오
미국의 〈보스턴 글로브〉는 지난해 12월29일(한국시각) 여자피겨스케이팅을 정리하면서 “올 시즌 최고의 뒤집기 드라마는 김연아가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에서 ‘디펜딩 챔피언’ 아사다 마오(일본)를 꺾은 것”이라고 했다. 김연아가 아사다를 누른 것은 그만큼 ‘신선한 충격’이었다고 하겠다. 김연아와 아사다는 동갑내기이기 때문에 은퇴할 때까지 계속 자웅을 겨뤄야만 한다. 아사다도 이를 인지해 “김연아는 내 평생 라이벌이 될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이후 먼저 발걸음을 뗀 이는 아사다다. 12월말 열린 일본피겨선수권대회에서 아사다(211.76점)는 주특기인 ‘트리플 악셀’을 완벽하게 연기하면서 안도 미키(185.65)를 큰 점수차로 누르고 우승을 차지했다.
창춘→도쿄
김연아는 2007 시즌을 국내무대에서 시작한다. 9일과 10일 이틀에 걸쳐 경기도 고양 덕양어울림누리 성사얼음마루에서 열리는 제61회 국내피겨선수권대회 참가가 그것이다.
그러나 김연아의 눈은 겨울아시아경기대회(1.28~2.4)가 열리는 중국 창춘과 세계피겨선수권대회(3.19~25) 개최지 일본 도쿄로 향해 있다. 특히 3월 적지나 다름없는 도쿄에서 김연아는 아사다는 물론, 최근 은퇴설을 부인하고 1월에 열리는 러시아선수권대회 참가의사를 밝힌 세계랭킹 1위 이리나 슬루츠카야(27)와도 겨뤄야 한다. 그가 좋아하는 미국의 샤샤 코헨(22)은 최근 2009년 세계선수권대회까지는 경쟁없이 휴식기를 갖겠다고 선언해 당분간 대결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184.54
김연아의 프로 최고성적은 쇼트프로그램 65.22, 프리스케이팅 119.32, 종합 184.54이다. 모두 지난해 11월 파리에서 열린 시니어 그랑프리 4차대회에서 올린 성적이다. 2006년 토리노 겨울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낸 시즈카 아라카와(일본)가 당시 올린 점수는 191.34였다. 또한 아사다의 국제대회 최고점수는 199.52, 슬루츠카야의 최고점수는 198.06이다. 184.54의 벽을 허무는 것은 김연아의 몫이다. 김연아는 올해 캐나다에서 장기간 머물면서 자기와의 싸움을 하게 된다.
체력
김연아는 시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이후 광고촬영 및 행사 참여 등으로 그다지 충분히 쉬진 못했다. 허리부상을 치유할 시간도 충분치가 않았고, 훈련시간도 별로 없었다. 때문에 국내선수권대회를 앞두고 체력적인 문제가 가장 고민이다.
사공경원 대한빙상경기연맹 경기이사는 “지금은 시즌 중이기 때문에 김연아가 새로운 기술을 익히는 것은 무리”라면서 “세계선수권대회를 앞두고 김연아는 체력을 최대한 끌어올려야만 한다”고 지적했다. 그래야 점프도 좋아지고 실수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세계랭킹 15위 안에 드는 선수들은 실력이 비슷하다고 봐야 하기 때문에 얼마나 실수를 줄이느냐가 관건이 될 수 있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사진 연합뉴스
박태환
3월 세계수영선수권 이어 내년 베이징올림픽 준비
순간 스피드 끌어올리려 주종목 아닌 단거리도 출전
그랜트 해켓
“(박태환이) 해켓의 악몽이 돼가고 있다.”(〈시드니 텔레그라프〉 2006년 12월17일치) 수영 남자 자유형 1500m 세계신기록(14분34초56) 보유자이자 올림픽 2연패를 달성한 그랜트 해켓(27·오스트레일리아)은 박태환의 우상이다. 오스트레일리아 언론이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이 종목 올림픽 3연패를 노리는 해켓의 라이벌로 박태환을 지목했다는 사실은 달라진 그의 위상을 반영한다.
박태환은 “해켓보다 모든 면이 부족하다”며 “페이스 조절, 입수·턴 동작의 부드러움을 배우고 싶다”고 말한다. 체격(1m97)과 노련미·경기운영 등 여전히 해켓이 박태환(1m81)보다 한 수 위인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직 10대인 박태환에겐 무한한 잠재력이 꿈틀거린다. 해켓이 17살 때 세운 자유형 1500m 최고기록은 15분01초46이었다. 박태환의 지난해 12월 도하아시아경기대회 기록은 14분55초03(아시아신기록)이다. 같은 나이 때 기록으론 박태환이 훨씬 앞선다.
멜버른→베이징
“최종 목표는 올림픽이다.” 박태환의 몸과 마음은 이미 2008년 중국 베이징올림픽을 향해 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노민상 감독의 말도 이와 일맥상통한다. 3월18일부터 오스트레일리아 멜버른에서 열리는 2007 세계수영선수권은 올림픽 메달 가능성을 점쳐볼 기회다. 세계선수권을 앞둔 대표팀 구성은 이르면 10일에 이뤄질 전망이다. 경영대표단은 2개월 동안 체력과 전술훈련에 전념한 뒤, 대회 한달 전부터 멜버른이나 시드니 인근으로 이동해 현지 적응훈련에 들어간다.
5초/400m
‘400m마다 5초씩 줄여라.’ 박태환은 지난해 8월 범태평양수영선수권 남자 자유형 400m에서 3분45초72로 금메달을 따내며 자신의 최고기록을 세웠다. 은퇴한 ‘인간어뢰’ 이언 소프(25·오스트레일리아)의 세계기록(3분40초08)과는 약 5초의 차이가 난다. 1500m에서도 최고기록에 20여초 뒤떨어진다. 매 400m마다 5초 정도의 기록을 단축해야만 세계기록에 근접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오는 셈이다.
1500m의 긴 레이스를 펼치는 동안, 매 50m를 예외없이 29~30초대에 들어올 만큼 박태환의 지구력은 뛰어나다. 남은 과제는 최소한 0.5~1초 가량 50m 기록을 단축시킨 상태에서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는 감각을 기르는 일이다.
스피드
장거리 선수인 박태환이 자유형 100m·200m에 나가는 것도 기록단축에 필수인 순간 스피드를 올리기 위한 전략적인 선택이다. 따라서 3월 세계선수권에서도 도하아시아대회와 마찬가지로 200m나 100m에도 출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박태환 본인도 “400m·1500m가 주 종목이지만 순간 스피드를 보완하기 위해서 단거리에 출전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태환은 현재 도하아시아경기대회 참가로 줄어든 몸무게(8㎏)를 보충하고 발바닥 사마귀 치료에 전념하는 중이다. 한국 나이로 10대의 마지막을 맞이한 박태환에게 2007년은 꿈이 영그는 희망의 한해가 될 것이 분명하다.
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사진 로이터 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