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춤추는 동화의 나라에 온 것 같죠!’ 전교생이 외발자전거를 타는 경기도 화성 동탄초등학교 신리분교 학생들이 방학 중인데도 학교로 나와 외발자전거 묘기를 보이고 있다.
전교생이 외발자전거 타는 동탄초 신리분교
2007년 1월3일. 방학이 분명한데…. 교문을 들어서는 아이들을 보고있자니 눈이 휘둥그레진다. 어른 키보다 한뼘은 더 커보이는 그들이 올라탄 것은 다름 아닌 외발자전거. 두팔을 벌려 뒤뚱뒤뚱 수평을 잡는 아이들. “손이 시려워서” 아예 두손을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아이들까지. 마치 동화 속에 온 듯한 이곳은 외발자전거의 ‘메카’ 경기도 화성의 동탄초등학교 신리분교장(교장 변미량)이다.
3명의 교사와 전교생 33명으로 이뤄진 조그만 학교에 외발자전거 자국이 찍힌 지도 2년이 넘었다. 2004년 여름 박상철(37) 교사가 처진 학교 분위기를 살리기 위해 들여왔던 외발자전거는 이제 학교와 학생들의 자랑거리가 됐다. 이들이 세상에 알려진 건 지난해 2월(<한겨레> 2월6일치). 이미 외발자전거를 통해 표정이 밝아졌던 신리분교는 지난 1년이란 시간 동안 또 그만큼 변해 있었다.
지난해 13대→30대…한명당 한대꼴
넘어지고 일어서며 ‘꿋꿋한 정신’ 단련
“그날 이후로 이곳이 외발의 메카가 됐어요.” 박상철 교사가 가장 먼저 안내한 곳은 건물 뒤쪽 외발자전거 보관대. 1년 전 13대였던 자전거가 30대로 늘어났다. 전교생 33명 중 1, 2학년 일부를 제외한 28명이 외발자전거를 타니까 아이 한명 당 자전거 한대가 확보된 셈이다.
“밝아진 아이들을 보면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이 누구겠어요? 부모님들이 나서서 자전거 구입에 힘을 보태주셨죠.” 학교와 가까운 한국도로공사 도로교통기술원과 지난해 5월엔 정식 자매결연을 맺었고, 한국외발자전거협회에서도 많은 도움을 줬다. “손자가 타던 거”라며 어느 할아버지가 보내준 것도 있다.
지난 10월엔 대전에서 열린 외발자전거 전국대회에 전교생 대부분이 참가했다. “버스 한대를 통째로 빌려서, 무슨 선수단 같았다”는 박 교사는 “초등부 9개 종목 1위는 당연히 우리 아이들이 휩쓸었다”며 의기양양하다. 비록 동호인들 위주의 소규모 대회였지만 ‘전국대회 금메달’이라는 자부심은 아이들에게 힘이 됐다. 한번이라도 외발자전거에 발을 올려본 사람이라면, 그 위에서 균형을 잡고 속력을 내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지 짐작할 수 있다. 그 과정을 전교생이 함께 해냈으니…. 박 교사는 “(아이들이)자신감이 넘쳐 우쭐대기까지 한다”며 웃었다.
“한번 붙어볼래요?” 갑자기 아이들이 두발자전거와의 시합을 제안했다. “에이, 설마…”했는데, 결과는 외발자전거의 완벽한 승리. 곡선이 많은 조그만 운동장에선 한발로 구르는 외발자전거가 더 자유로웠다. 기어가 없어 정직하게 굴린 만큼만 굴러가는 외발자전거의 숨겨진 힘을 느꼈다. 짧게는 1주일에서 길게는 2년까지. 외발자전거 위에서 균형을 잡는데 걸린 시간은 제각각이만, 넘어져도 금방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은 모두에게 똑같다.
2학년 한울(10)이는 “두발자전거보다 외발자전거를 먼저 배웠다”고 했다. “아빠랑 내기해서 이겼다”는 한울이의 얼굴을 찬찬히 뜯어보니 어딘가 낯이 익다. 알고 보니 박상철 교사의 아들이다. “운동 좀 한다”는 박 교사도 혀를 내두른 외발타기를 아이들은 보란듯이 성공했다. “재미있어서 하는 일은 누구도 못 말린다”는 이보연(44) 교사의 말이 딱 맞는 듯 하다.
‘넘어지고 일어서기’를 수없이 반복한 아이들. 그들이 몸으로 익힌 ‘실패와 성공’의 과정들은 먼훗날 순간순간 그들을 찾아올 것이다. 그 순간마다, 넘어져도 일어서는 외발자전거처럼, 꿋꿋이 견뎌낼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화성/박현철 기자 fkcool@hani.co.kr
넘어지고 일어서며 ‘꿋꿋한 정신’ 단련
전교생이 외발자전거 타는 동탄초 신리분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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