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허재(42) 전주 케이씨씨(KCC) 감독은 현역시절 ‘농구 대통령’으로 불렸다. 스포츠 스타의 별명 가운데 ‘황제’ ‘천재’는 많아도 ‘대통령’은 그가 유일하다. 그도 처음엔 ‘농구 9단’, ‘농구 천재’ 쯤으로 불렸다. 그런데 어떻게 ‘농구 대통령’이라는 별명이 붙은 걸까?
중앙대 4학년 때인 1987년 10월, 그는 단국대와의 경기에서 혼자 무려 75점을 터뜨렸다. 같은해 3월, 이충희(현 동국대 감독)가 필리핀 마닐라 국제대회에서 올린 67득점을 가볍게 넘어선 신기록이다. 당시까지 농구계에선 1960년대 이국희씨가 기록한 75점이 전설처럼 비공식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허 감독은 ‘전설’을 ‘현실’로 만들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전반전 팀이 기록한 54점을 모두 혼자 넣었다. 게다가 일방적인 경기가 아니라 99-97의 극적인 역전승이었다.
1994~95 농구대잔치 기아자동차와 삼성전자의 챔피언결정전 4차전에서는 종료 7분 전부터 혼자 17점을 쏟아붓는 ‘원맨쇼’로 역전승을 거두며 기아차를 챔피언에 올려놓았다. 당연히 최우수선수에 뽑혔고, 이 즈음부터 ‘농구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의 나이 서른 둘에 출범한 프로농구도 그를 위한 무대였다. 1998년 12월, 그는 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두 경기 연속 트리플더블을 작성했다. 이후에도 외국인 2명(앨버트 화이트, 크리스 윌리엄스)만이 작성한 대기록이다. 1997~98 시즌 챔피언결정전에서는 손등이 부러지고 눈썹이 찢어져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경기에 나섰다. 그의 투혼은 한편의 휴먼드라마였고, 그는 준우승을 하고도 최우수선수에 뽑혔다.
언제나 정상에 있었던 그가 요즘 시련의 세월을 보내고 있다. 팀은 여전히 최하위다. 최근 4연패로 9위와도 점점 멀어지고 있다. 흰머리는 부쩍 늘었고, 소주 2병을 마셔야 잠이 올 정도다. 정상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농구 대통령’. 그가 위기를 어떻게 헤쳐갈지 궁금하다.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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