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신선우 창원 엘지(LG) 감독 별명이 ‘신산’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수싸움에 능하다는 얘기다. 유도훈 안양 케이티앤지(KT&G) 신임 감독은 현역시절 ‘코트의 여우’로 불렸다. 그의 키는 정확히 1m72.6이다. 반올림해서 1m73이라고 우긴다. 농구선수로서는 너무 작은 키다. 현역시절엔 김태진(인천 전자랜드)과, 최근까지도 신인 이현민(LG)과 틈만 나면 ‘도토리 키재기’를 했다. 작은 키지만 코트에선 여우처럼 키 큰 선수들을 농락하곤 했다.
신산과 여우는 무려 12년을 실과 바늘처럼 지냈다. 서울 용산고와 연세대 선후배이면서도, 띠동갑이라는 간극 때문에 1995년 실업팀 현대 감독과 선수로 처음 만났다. 이후 사제지간으로 6년, 감독과 코치로 또 6년을 보냈다. 팀은 현대에서 케이씨씨(KCC)로, 또 엘지로 바뀌었지만 둘은 늘 함께 있었다.
사실 두사람은 대조적이다. 신산은 큰 키와 까무잡잡한 피부에 위엄있는 아버지상이다. 여우는 하얀 얼굴에 부드러운 미소로 선수들을 도닥이는 어머니 품성이다. 둘의 오묘한 조화는 프로농구 10시즌 동안 무려 3번의 우승과 2번의 준우승으로 빚어졌다.
신 감독은 언제부턴가 사석에서 “유 코치를 반드시 감독으로 만들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는 “유 코치는 정말 성실하고 실력있는 친구”라고 엄지를 치켜올리곤 했다.
신산과 여우의 이별은 예정보다 빨리 찾아왔다. 감독이 공석 중인 케이티앤지쪽에서 신 감독에게 “유 코치를 사령탑으로 영입해도 되겠느냐”는 제안이 온 것이다. 둘은 술잔을 부딪혔다. 그리고 신산은 여우에게 “내 장점은 가져가고 단점은 두고가라”며 길을 열어줬다. 정규시즌 마지막 5~6라운드를 앞둔 상황에서 쉽지 않은 결단이었다. 여우는 가슴이 울컥했다. 유도훈 감독은 2월3일 감독 데뷔전을 치른 뒤 9일 창원에서 신선우 감독의 엘지와 만난다. 동지에서 적으로 만나 총을 겨눌 수밖에 없는 순간이다. 유 감독은 “경기가 끝나면 신 감독님께 머리숙여 인사하겠다”고 했다. 신산과 여우가 펼칠 감동의 승부가 기대된다.
김동훈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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