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스포츠 스포츠일반

2m5cm ‘코끼리’와 85살 경호원의 어깨동무

등록 2007-04-06 14:19

거인병 김영희씨와 이웃 안옥선 할머니. 송호진 기자
거인병 김영희씨와 이웃 안옥선 할머니. 송호진 기자
거인병 김영희씨와 이웃 안옥선 할머니
“미용실 앞으로 할머니가 나가실거예요.”

1m55㎝라는 안옥선 할머니의 키는 더 작아보였다. ‘거인’을 만난 뒤 “나도 배운 게 많아 장기기증까지 접수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듣고서야, 85살 할머니의 얼굴이 왜 편해보였는지 알게 됐다.

“제 경호원이세요.” 8평 단칸방으로 할머니가 들어서자, 1980년대 여자농구 국가대표 시절 ‘코끼리’로 불린 김영희(45·2m5㎝)가 말한다. 그는 의자에 앉아있었다. “바닥에 앉으면 제 힘으로 일어서질 못하거든요.” 탁자 위 컴퓨터는 고장난 채 며칠째 방치돼 있었다. ‘코끼리를 쏘아올린 작은공’이란 블로그로 세상과 만나는 소통도 잠시 차단돼 있었다.

왕년 농구스타 김영희씨 부모 사망에 거인병 ‘절망’
3년 전 아들 잃은 할머니 만나…모녀처럼 지내
체육연금 아껴 노약자 돕고 ‘장기기증 서약’도

거인병(말단비대증)에 걸려 얼굴이 일그러지고 몸이 부은 그는 주변의 도움으로 한달에 한번 140만원짜리 성장억제제를 맞는다. 심장까지 커져 생명을 잃을 수 있어서다. “할머니가 부축해 병원도 가고 농구체육관도 가요. 가방도 들어주시고. 남들이 ‘엄마는 작은데 딸은 왜 이리 크나’하고 오해하기도 해요.”

3년 전, 할머니는 둘째아들까지 간암으로 보낸 다음날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3개월여를 누워있었다. 볕도 안드는 방을 찾은 건 동네 꼬마들의 놀림대상이었던 옆방 김영희였다. “글도 모르고, 혼자 사는 날 찾아주는 사람 한명 없는데 이렇게 큰 사람이 들어와 밥도 해주고…. 그 은혜 생각해서 같이 다녀요. 딸 같아요.”


1980년대 여자농구 국가대표였던 김영희씨.
1980년대 여자농구 국가대표였던 김영희씨.
1987년 뇌종양 수술 뒤 은퇴한 김영희는 이후 방안에 갇힌 ‘코끼리’로 살아왔다. “나가지않고 창밖을 보며 흘러가는 세월만 원망했어요.” 어머니가 98년 뇌출혈로, 아버지가 200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난 뒤 김영희는 죽을 결심도 했다. 6개월여간 음식을 먹지않아 몸이 앙상해져 사경을 헤매기도 했다. “지옥 불구덩이에 있던 시절이었죠.” 문득 그는 어머니의 말씀을 떠올렸다. “‘영희야, 네가 먼저 베풀어라. 그럼 네가 들어갈 틈이 생길거다’고 하셨거든요.” 체육연금(1984 로스앤젤레스올림픽 은메달) 월 20만원을 아껴 부천시 오정동 할머니, 할아버지들께 떡과 죽도 대접하고, 소녀가장도 도왔다. 광명시에 있는 정신지체아 시설도 찾았다. “동네 아이들에게 사탕과 과자를 줬더니 ‘거인 아줌마한테 인사하니 사탕도 준다’며 좋아하더라고요.”

안옥선 할머니는 “내가 젊으면 더 도와줄텐데…. 저 사람한테는 위로보다 더 좋은 약이 없죠”라며 김영희를 올려다봤다. “저도 장기기증을 하려고요. 한국에서 제일 큰 여자가 있었는데, 마음은 솜사탕이더라는 기억을 남겨야죠.” 앞니 몇개만 겨우 남은 ‘코끼리’의 입가에 금세 미소가 번졌다. 부천/글·사진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스포츠 많이 보는 기사

여자국수 김채영 9단, 박하민 9단과 결혼…12번째 프로기사 부부 1.

여자국수 김채영 9단, 박하민 9단과 결혼…12번째 프로기사 부부

파리 생제르맹·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PO 1차전 승리 2.

파리 생제르맹·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PO 1차전 승리

아깝게 메달 놓쳤지만…37살 이승훈, 역시 ‘한국 빙속 대들보’ 3.

아깝게 메달 놓쳤지만…37살 이승훈, 역시 ‘한국 빙속 대들보’

최성원과 차유람 앞세운 휴온스, 팀 리그 PO 기적의 막차 탈까? 4.

최성원과 차유람 앞세운 휴온스, 팀 리그 PO 기적의 막차 탈까?

한국 여자컬링, 일본 ‘완벽봉쇄’…2연승으로 1위 순항 5.

한국 여자컬링, 일본 ‘완벽봉쇄’…2연승으로 1위 순항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