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왕기춘 선수
1년전 ‘이원희 한판승 연습상대’
“꼭 국가대표가 돼 이곳에 다시 들어오자고 결심했죠.” 19살 왕기춘(용인대 1년)은 지난해 9월 태릉선수촌에 처음 들어왔다. 2006도하아시아경기대회 직전 3개월간 ‘한판승의 사나이’ 이원희(26·KRA)의 연습상대가 되는 게 그의 임무였다. 이원희의 ‘빗당겨치기’가 들어오면 넘어가야 했고, 때론 강하게 버텨 선배의 집중력을 높여줘야 했다. “선수촌에 훈련 파트너로 들어온 거잖아요. 아파도 아프다고 할 수 없고, 선배들 심부름도 해야했고, 마사지같은 것도 뒷전으로 밀렸고….” 왕기춘은 지난 3월 국가대표 2차 선발전 준결승에서 발목이 좋지않던 이원희를 눌러 ‘호랑이’를 잡더니, 결승에선 ‘이원희의 천적’ 김재범마저 꺾었다. “원희 형과 경기하기 전 제가 너무 긴장하니까 형이 ‘긴장 풀어’라고 하더라고요. 형이 아팠는데 이겨서 좀 미안했어요. 체육관 나오다 원희 형과 눈이 마주쳤는데, 와~ 형이 ‘기춘이 많이 늘었는데…’라고 하는 거예요.” 청소년대표 출신 왕기춘은 지난 3월 중순 연습생이 아닌 국가대표가 돼 선수촌을 다시 찾았다. “제가 미니카를 굉장히 좋아하는데 2차 선발전 끝나고 싹 버렸어요. 국가대표로 처음 나가는 대회가 얼마 안남았잖아요. 솔직히 자신있어요.” 16, 17일 이틀간 쿠웨이트에서 열리는 2007아시아유도선수권 남자 73㎏급에 한국은 이원희가 아닌 왕기춘을 내보낸다. 왕기춘은 한국 유도 사상 최연소 아시아선수권 우승에도 도전한다. “원희 형의 빗당겨치기도 모방해봤는데 잘 안되더라고요. 제 주무기요? 오른손으로 상대를 잡았다가 순간 왼손으로 바꿔 업어치기하는 거죠.” 바로 2차 선발전 우승 당시 종료 7초 전 걸었던 기술이다. 전기영 대표팀 코치는 “파워가 약간 부족하지만 기술은 아주 다양한 선수”라고 평가했다. “어렸을 때 돈도 자주 뺏기고 맞고 다니니까 엄마가 8살 때 유도장으로 데려가셨죠. 그 유도로 올림픽 금메달도 따야죠.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 못 나가도 어리니까, 4년 뒤가 또 있잖아요. 내 체급에서 지구 안에 1위가 된다는 거, 얼마나 신나는 일인데요!” 초등학교 4학년까지 출석 부를 때마다 아이들이 웃어 고개도 못들 정도로 창피한 이름이었다는 왕기춘. “아빠한테 여러번 바꿔달라고 졸랐다”는 바로 그 이름이 한국 유도의 희망으로 떠올랐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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