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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세포도 삼진 아웃 잡아주길 바랬건만”

등록 2007-06-12 18:17수정 2007-06-12 18:21

프로야구 엘지 트윈스 투수코치 이길환님
프로야구 엘지 트윈스 투수코치 이길환님
[가신이의 발자취] 프로야구 엘지 트윈스 투수코치 이길환님을 그리며
30년전 종일 야구장 지키게한 ‘소년의우상’
프로야구 개막전 선발 ‘당당한 모습’ 생생
야구기자된 ‘소년’ 만나지 못한 채 떠나다

비쩍 마른 몸에 새까만 얼굴. 하지만 그는 잘도 던졌습니다. 상대 타자들은 춤추는 듯한 그의 공에 연신 헛방망이를 돌렸습니다.

1977년 여름, 선린상고 3학년생 이길환은 어린 소년의 눈에 ‘우상’으로 박혔습니다. 선린상고가 좋아, 아니 이길환이 좋아 틈만 나면 서울 중곡동에서 을지로6가 서울운동장(현 동대문야구장)까지 한걸음에 내달렸습니다. 일요일에는 온종일 동대문야구장에 앉아 꼬박 4~5경기를 모두 봐야 직성이 풀렸습니다. 소년이 그렇게 된 것은 순전히 이길환 때문입니다. 어머니에게 용돈 500원을 받아들고 입장료(300원)와 왕복 버스비(120원)를 하면 당시 선보이기 시작한 쥐포 서너 마리를 씹을 수 있는 돈이 남았습니다. 쥐포의 달콤한 맛처럼 이길환의 투구는 정말 짜릿했습니다.


프로야구 엘지 트윈스 투수코치 이길환님
프로야구 엘지 트윈스 투수코치 이길환님
하지만 꼭 결승전이 문제였습니다. 1회전부터 거의 혼자 던지다 보니, 그의 어깨는 남아나지 않았습니다. 전날 준결승에서 완투하고 다음날 또 마운드에 오르는 것은 가혹한 일이었습니다. 마치 야구영화나 만화에 나오는 것처럼 의사는 “오늘 또 던지면 선수생명이 끝난다”고 그에게 경고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이길환은 기어이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공 하나 하나에 혼신의 힘을 실었습니다. 몸이 좋지 않은 듯 공을 던질 때마다 콜록거리며 기침을 했습니다. 소년의 마음이 무너지듯, 선린상고는, 아니 이길환은 언제나 결승전에서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선린상고가 ‘만년 준우승팀’이라는 별명이 붙은 것도 아마 그때부터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는 5년 뒤, 소년의 눈 앞에 다시 나타났습니다. 1982년 프로야구가 생기면서 MBC 청룡 유니폼을 입은 것입니다. 그리고 행운을 거머쥐었습니다. 3월27일 개막전 선발(왼쪽)로 나선 것입니다. 원래는 에이스 하기룡이 나설 예정이었지만 복통으로 등판하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이듬해 이길환은 무려 15승을 거두며 당당히 에이스로 발돋움했습니다.

세월이 흘러 그도 은퇴를 했고, LG 스카우트로, 2군 투수코치(오른쪽)로 활동한다는 소식을 간간이 들었습니다. 언젠가는 라디오에서 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원음방송〉 해설자로 나선 것입니다. 그가 췌장암과 싸우고 있다는 소식은 지난해 플레이오프가 한창이던 대전구장에서 들었습니다. 상대 타자를 압도하듯, 췌장암도 멋지게 삼진으로 잡아내길 빌고 또 빌었습니다.

그러나 하늘은 끝내 그를 데려가고 말았습니다. 12일 오전 9시30분이었습니다. 1959년에 태어났으니, 이제 겨우 마흔여덟입니다. 소년은 야구담당 기자가 됐습니다. 올해 어언 3년째. 그러나 생전에 그를 만나지 못한 게 못내 아쉽습니다. 아마도 하늘은 그를 영원히 ‘소년의 추억’으로 가둬놓으려 했던 모양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빈소 안양 한림대 성심병원. 장례미사 14일 오전 9시. (031)384-2464.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한겨레〉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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