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 ‘부녀 챔피언’ 복서 우동구·우지혜
한국 최초 ‘부녀 챔피언’ 복서 우동구·우지혜
마지막 10라운드. 세컨드(코치)를 본 아빠는 숨을 거칠게 몰아쉬는 딸에게 말했다. “피하다가 찬스가 오면 때려라.” 점수도 앞선 듯했고, 일본 미즈타니 쓰카(25)의 주먹도 묵직했기 때문이다. 딸은 물러서지 않았다. 30초를 남기고 자기보다 6㎝나 큰 상대에게 소나기 주먹을 퍼부었다. “흐지부지 끝내고 싶지 않았거든요. 붙어서 날리는 훅이 이번에 잘 들어가더라고요.” 종이 울렸다. 아빠는 딸을 번쩍 들어 목에 태웠다. “춤을 추고 싶었죠. 10라운드 끝까지 뛴 딸이 자랑스러워서. 막판에 얼마나 힘듭니까. 그런데도 주먹을 뻗는데, 와~대단하더라고요.” 3-0 판정 완승. 국제여자복싱협회(IFBA) 슈퍼페더급(58.97㎏) 세계챔피언 우지혜(20·166㎝·7승1패1KO)는 지난 23일 1차 방어전을 화끈한 공격으로 지켜냈다. 그 저돌성은 ‘탱크’로 불린 아빠 우동구(46)를 닮았다. 두 체급 한국챔피언(주니어 라이트급, 라이트급)이었던 우동구는 맞으면서도 밀고 들어가는 인파이터였다. “딸이 9살 때였죠. 엄마한테 100원을 달라고 하는데 그걸 못 주는 모습을 보고….” 93년 바로 글러브를 벗었다. 트럭 야채장사와 택시운전을 했다. 버스 기사 7년 하면서 ‘그 놈의 미련’을 버리지 못해 또 권투훈련을 했다. 미련? 그건 ‘세계챔피언 벨트’였다. 권투체육관 관장이 된 아빠는 태권도 3단이던 딸이 고등학교 2학년 됐을 때 슬쩍 권투를 권했다. “눈 찢어진다고 죽어도 안한다고 하더라고요. 프로테스트(2004년 3월)를 받아보라고 했고, 통과한 김에 데뷔전을 치러보자고 했죠.” 딸은 2005년 5월, 3경기만에 한국챔피언이 됐고, 지난 3월 아빠가 이루지 못한 세계챔피언이 됐다. ‘부녀 챔피언’은 국내 최초다. 세계 복싱계에선 딸 라일라 알리(WIBA 슈퍼 미들급·24전승21KO)가 무하마드 알리(65·미국)에 이어 챔피언이 됐다. 아빠는 “딸과 같이 링에 서서 애국가를 들을 때 눈물을 참느라 혼났다”고 했다. 딸은 “처음엔 몰랐는데 조금씩 권투에 ‘필(feel)’이 꽂힌다. 내 주먹에 관중의 숨소리가 반응할 때 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딸은 3개월간 1차 방어전을 준비하며 올 초 복싱 신인왕전 2위를 차지한 동생 병준(고3)과 아빠를 스파링 파트너로 삼았다. 염동균(57) WBC 전 슈퍼밴텀급 세계챔피언의 집중지도도 우지혜를 발놀림이 있는 인파이터로 변신시켰다. “아빠가 움직이는 샌드백이 돼주셨죠. 내가 배운 기술을 쓸 수 있도록 나를 위해 맞아주신 거죠. 아빠는 강한 복서였지만 세계챔피언이 못돼 2·3인자로 밀린 설움이 있잖아요. 내가 잘해서 나를 가르치는 아빠에게 그 때 받지 못하셨던 스포트라이트를 드리고 싶어요.” 송호진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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