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카우터
전세계 돌며 강의하는 국제농구연맹 순회코치 폴 카우터
“스톱!”
그 한마디에 코트에서 뛰던 선수들은 동작을 멈췄고, 관중석에 앉은 수강생 50여명은 일제히 그에게로 시선을 모았다. 그는 좀처럼 가만있지 않았다. 두 손을 휘저으며 열변을 토했고, 발과 눈은 이쪽 저쪽으로 옮겨다녔다. 물론 입은 쉴 새 없이 말을 쏟아냈다. 관중석에 앉은 ‘학생’들 중엔 낯익은 프로농구 감독들도 꽤 있었다. 그의 등 뒤, 그러니까 코트에는 휘문고와 단대부고 선수들이 시범경기를 벌이며 ‘강의 모델’이 됐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도곡동 숙명여고 체육관. 후텁지근한 날씨에 에어컨도 없었지만 수강생들은 한마디라도 놓칠새라 눈을 크게 떴다. 강사는 국제농구연맹(FIBA) 순회코치 폴 카우터(59·사진). 미국 출신인 그는 지난해 레바논 남자국가대표팀 감독으로 국제농구연맹이 주는 ‘올해의 감독상’까지 받은 인물이다. 레바논 대표팀을 가르칠 때는 체육관에 폭탄이 떨어져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일도 있었고, 2006년 세계선수권대회에서 토니 파커가 뛰었던 프랑스를 격파해 세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지금은 세계 132개국을 돌며 각 나라 농구 지도자를 ‘지도’하고 있다.
그가 지구를 돌고 돌아 대한농구협회 초청으로 지난 5일 마침내 한국을 처음 방문했다. 7일부터 나흘간 열린 강의에는 칠순의 이우재(76) 전 울산 모비스 코치와 정주현(72) 일본여자농구 미쓰비시 기술고문부터 30대 초반의 젊은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한국 농구지도자들은 대부분 다녀갔다.
카우터는 인터뷰를 한사코 거절하다가 마지막 강의가 끝난 뒤 비로소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의 입에선 쓴소리가 쏟아졌다. 그는 “과거 한국 남녀 농구는 세계 최고 수준의 패싱능력을 가진 팀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짜임새도 없고 색깔도 사라졌다”고 지적했다. 대표팀 전임감독제에 대해선 “중국은 리투아니아 출신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에 앉혔다”며 “그런데 한국은 대표팀 전임감독제조차 흐지부지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나 한국농구에 희망의 메시지도 전달했다. ‘강의 모델’로 나섰던 고교 선수들을 가리키며 “좋은 재목감이 많다”고 칭찬한 뒤 “체계적인 관리와 지도로 어린 선수들을 잘 키워달라”고 당부했다.
글·사진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