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스포츠 스포츠일반

14년전 눈물 ‘뚝뚝’ 그 코트서…“이젠 웃지요”

등록 2007-10-19 19:28

‘관중들은 어떤 모습으로 코트 위 나를 지켜봤을까.’ 이형택(삼성증권)이 장충테니스코트 관중석에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 코트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김진수 기자 <A href="mailto:jsk@hani.co.kr">jsk@hani.co.kr</A>
‘관중들은 어떤 모습으로 코트 위 나를 지켜봤을까.’ 이형택(삼성증권)이 장충테니스코트 관중석에 편안한 모습으로 앉아 코트를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승패 연연않고 경기 즐기는 여유 생겨”
20일 삼성증권배 국제챌린저대회 참가
36.5˚C 데이트 / 테니스클리닉서 만난 이형택

1993년 서울 장충테니스코트. 구석에서 한 강원도 산골소년이 남몰래 서러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곁에는 테니스 라켓이 처참하게 부서져 있었다. 소년은 이날 열린 장호배 주니어대회 남자단식 결승전에서 같은 학교(봉의고) 친구(정성환)에게 풀세트 접전 끝에 패했다. 42연승도 끝났다. 어머니가 경기장을 찾으면 절대 이기지 못하는 징크스도 결국 깨지 못했다. 그는 ‘밥먹듯이’ 승리했지만, 홀어머니는 한번도 그가 이기는 것을 직접 보지 못했다. 머릿 속에 온갖 잡생각이 스치면서 눈물은 끊이지 않았다.

그로부터, 14년이 흘렀다. 소년은 이제 두 아이의 아빠가 돼 같은 장소에 서 있었다. 아디다스 주최 테니스클리닉(16~17일)에 참가한 70명의 테니스 동호회 사람들이 그를 영웅처럼 바라봤다. 셔츠가 땀에 흠뻑 젖는 줄 모르게 그는 사람들에게 친절한 미소를 띄우며 뛰어다녔다. “가르치는 게 참 재미있어요. 나중에 은퇴해서도 아카데미 같은 걸 하고 싶어요. 내가 키운 선수들이 세계무대에서 내 기록을 깨거나 그러면 기분이 묘하겠죠?”

이형택(31·삼성증권). 지난 1년 동안 그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2000년 이후 7년 만에 다시 이룬 US오픈 16강과 데뷔 첫 윔블던 32강, 그리고 국가대표로 20년 만의 데이비스컵 월드그룹(16강) 진출까지…. 무엇이 노장인 그를 코트에서 춤추게 했을까. “예전에는 꼭 이겨야만 한다는 부담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해외에 나가면 숙소-코트-식당 밖에 몰랐죠. 최근에는 경기할 때 승패에 연연하기 보다는 즐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어요.”

그는 요즘 해외투어를 나가면 12년간 한솥밥을 먹은 윤용일(34) 코치와 시간이 날 때 골프를 친다. 최고 스코어가 80타(싱글)였다니 골프도 상당한 수준급이다. 젊은 시절 대회에 나가면 옆에서 누가 말시키는 것조차 꺼려했던 그였지만, 이제는 가족들과 함께 투어대회에 참가하는 여유도 생겼다. “주위에서는 안 좋게 보는 눈도 있지만, 괜찮은 것 같아요. 아내가 오면 승률도 아주 좋죠.”

올해 이형택의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최고 세계순위는 36위. 현재는 44위지만 시즌 내내 30~40위권을 유지했다. 때문에 2008 베이징올림픽 자력출전도 노려볼 만하다. 올림픽 남녀단식은 각각 64강전으로 치러지는데, 남녀 세계랭킹 48위에 드는 선수는 자동으로 참가하고 대륙별 와일드카드 등으로 16명이 추가된다. 48위 안에 들더라도 한 국가에서 2명 이상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기 때문에, 70위권이면 자력출전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지금껏 바랐던 것은 100% 가까이 이뤘다”는 이형택은 “내년에는 베이징올림픽 참가에 올인하겠다”고 했다. 2년 전 은퇴를 고려했다가 “후회를 남기지 말자”는 생각에 마음을 바꿔먹은 뒤 머릿속에서 ‘은퇴’라는 두 글자를 완전히 지운 그다.

한국테니스사에 기념비적 기록을 세우고 있는 이형택은 어린 선수들에게 충고를 잊지 않는다.“요즘 후배들이 경기하는 걸 보면 신체적·환경적으로는 많이 좋아졌는데, 정신력은 나빠진 것 같아요. 성실·끈기가 없다고 할까. 과정을 포기하고 결과만 원하는 것 같은데, 그런게 많이 아쉬워요.”

과연 그는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운동을 시키고 싶을까. “첫째가 역도선수가 되려는지 물건 드는 걸 참 좋아해요. 운동신경이 좀 있는 것 같은데, 아이들이 테니스선수가 돼 아버지 기록을 깨면 정말 최고겠죠.” 이형택은 20일부터 8일 동안 서울 올림픽코트에서 열리는 삼성증권배 국제챌린저대회(총상금 12만5000달러)에 참가해 대회 5연패를 노린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스포츠 많이 보는 기사

여자국수 김채영 9단, 박하민 9단과 결혼…12번째 프로기사 부부 1.

여자국수 김채영 9단, 박하민 9단과 결혼…12번째 프로기사 부부

파리 생제르맹·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PO 1차전 승리 2.

파리 생제르맹·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PO 1차전 승리

아깝게 메달 놓쳤지만…37살 이승훈, 역시 ‘한국 빙속 대들보’ 3.

아깝게 메달 놓쳤지만…37살 이승훈, 역시 ‘한국 빙속 대들보’

최성원과 차유람 앞세운 휴온스, 팀 리그 PO 기적의 막차 탈까? 4.

최성원과 차유람 앞세운 휴온스, 팀 리그 PO 기적의 막차 탈까?

한국 여자컬링, 일본 ‘완벽봉쇄’…2연승으로 1위 순항 5.

한국 여자컬링, 일본 ‘완벽봉쇄’…2연승으로 1위 순항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