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라기
정몽준 축구협회 회장 체면도 구겨졌다. 정 회장이 “내가 한나라당 입당할 때보다 기자가 많다”며 “또 유럽명장을 모시게 됐다. 2~3일 안에 결정된다”고 자랑한 바로 다음날, 그 명장들이 고개를 다 돌렸다. 협회는 부랴부랴 국내파에게 축구대표팀 감독직을 맡겼다. 국내 지도자들에겐 7년 만에 온 기회인데, 협회는 이 축제분위기에 ‘꿩 대신 닭’이란 오명을 뒤집어 씌웠다.
갈팡질팡한 기술위원회(위원장 이영무)는 물갈이 요구를 스스로 자초했다. 지난 7월 핌 베어벡 감독이 사임했을 때, 감독을 뽑고 대표팀 전력을 지원하는 기술위도 동반사퇴해야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래도 버티기로 작정했다면 감독 사임 즉시 한국축구를 크게 방향설정하면서 선임 작업에 들어가 시간을 확보해야 했다. 한 가지 안이 틀어지면 다른 방안으로 돌아설 수 있는 여유가 필요한 탓이다. 그러나 올림픽 최종예선이 코앞이라며 질질 끌면서 국내파, 국외파를 놓고 옥신각신하다 11월이 돼서야 국외파로 최종결정했다. 자신들이 점찍은 외국감독들은 한국에 별 관심이 없거나, 주저하는데도 11월까지 영입을 확신하는 발표도 했다. 하지만 압축된 두 감독이 고사하자 기술위는 2개월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 3차예선 탓에 K리그에서 감독을 빼오고 말았다. 국내 축구인들 반발에도 무릅쓰고 또 ‘유럽 감독’을 뽑아야 한다더니 마감시간에 쫓겨 국내파로 돌아서는 오락가락 행보를 한 것이다.
2주간 협상에 나선 가삼현 사무총장도 실패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는 “기술위가 후보를 정해주면 계약은 하룻 만에 할 수도 있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아마도 거스 히딩크부터 베어벡 감독까지 영입에 관여한 영국 에이전트사 ‘KAM 스포츠 인터내셔널’을 너무 믿은 듯 하다. 그러나 ‘KAM’은 조 본프레레 감독처럼 자질부족으로 판명된 감독을 공급하는가 하면, 2004년 브뤼노 메추 감독을 영입하려다 뒷통수를 맞은 사례처럼 일처리가 매끄럽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다시 ‘KAM’에 손을 뻗은 가 총장은 한국축구에 매력을 느끼지 못한 외국감독들을 끝내 설득하지 못했다. 문제는 국제국장 시절 히딩크 영입을 성사시킨 가 총장이 협회 살림을 운영하는 사무총장이 돼서도 국제업무 실무자를 놔둔 채 감독협상을 독점한다는 사실이다. 현대중공업 출신인 그가 잦은 국제대회 출장으로 정몽준 회장 의전에 너무 신경쓴다는 비판도 있다. 협회 관계자는 “축구협회 사무총장이 회장 비서에 머물러서야 되느냐”고 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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