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요삼(34)
심판 카운트때 ‘무서운 정신력’
‘경기 지면 미국진출 끝장’ 때문
‘경기 지면 미국진출 끝장’ 때문
최요삼(34)은 심판이 ‘다섯’을 셀 때 몸을 일으켰다. 이미 왼쪽뇌가 손상된 상태였다. 심판은 ‘여덟’을 센 후 버틸 힘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이쪽으로 와보라’고 했고, 최요삼은 서있기조차 힘든 몸을 움직였다. 전 세계권투협의회(WBA) 주니어플라이급 세계챔피언 유명우(43)는 “그건 정신력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경기 도중 상대와 머리를 부딪힌 데다 나이가 많으면 펀치 충격흡수도 크게 떨어진다”고 했다.
종이 울려 경기가 끝난 뒤에야 혼수상태에 빠진 최요삼은 왜 ‘다섯’에 일어났던 것일까. 그냥 바닥에 누워 케이오(KO)패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유, 그건 꿈이었다. 사고가 발생한 25일 세계복싱기구(WBO) 인터콘티넨탈 플라이급 타이틀 1차 방어전엔 안토니오 보비야(필리핀) 감독관이 경기를 봤다. 그는 필리핀계 미국인인 리온 파논실료 세계복싱기구 부회장이 보낸 인물이다. 이 기구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파논실료 부회장은 내년 최요삼의 미국진출을 돕기로 했다. 조건은 이 경기를 꼭 이겨야 한다는 것. 부회장이 파견한 감독관은 최요삼의 1차방어전을 꼼꼼이 살펴보고 있었다.
최요삼의 매니저이자 동생인 경호(32)씨는 “미국진출은 6개월 전부터 얘기를 해왔다. 이번에 이기면 내년 4월 미국에서 2차방어를 할 계획이었다”고 했다. 황현철 한국권투위원회 부장은 “내년 4월 세계복싱기구 세계챔피언인 오마르 나르바에스(아르헨티나) 방어전 때 앞선 경기로 최요삼도 인터콘티넨탈 플라이급 2차방어전을 치른 뒤 두 선수 모두 방어에 성공하면 몇달 후 최요삼이 나르바에스에게 도전하는 것을 추진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최요삼은 그렇게 세계챔피언 벨트를 찬 뒤 명예롭게 은퇴할 생각이었다.
최요삼은 1999년 세계권투 평의회(WBC) 라이트플라이급 세계챔피언에 올랐지만, 스폰서를 쉽게 찾지 못해 3년간 고작 4차방어전만 치르다 벨트를 뺏겼다. 그는 이제 남자 세계챔피언이 한명도 없는 상황에서 권투를 부흥시키고 후배들의 지표가 되겠다며 삼십대 중반에도 미국진출과 세계챔피언의 꿈을 놓지 않았다.
“꼭 케이오승으로 이기겠다”며 12라운드까지 뒤로 물러서지 않았던 그는 3-0 판정승으로 미국진출 기회를 스스로 열었지만, 혼수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 최요삼을 수술한 서울 순천향대병원 쪽은 26일 “뇌압 상승과 출혈을 막기 위해 약물치료 중이지만 별 차도가 없다. 1주일 정도 더 지켜봐야 의식회복을 판단할 수 있다”고 했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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