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 올림픽의 ‘이름없는 선수들’
운동화 살 돈 없는 마라토너 “조국을 위해”
폭탄 터지는 바그다드서 훈련 이라크 선수
운동화 살 돈 없는 마라토너 “조국을 위해”
폭탄 터지는 바그다드서 훈련 이라크 선수
금메달과 순위 경쟁이 한창이지만, 올림픽 출전이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훨씬 힘겹고 소중했던 선수들이 있다. 전쟁과 가난, 사회적 편견과 협박을 이기고 ‘국가를 대표해 올림픽에 나와 한없이 행복하다’는 이름 없는 선수들의 이야기는 올림픽 정신의 핵심을 건드린다.
▲ 16살 소녀, 내전과 편견 이기다 = 지난 17년 동안 소말리아는 단 한번도 내전의 무법천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베이징 올림픽 여자 400m, 800m 달리기에 출전한 사미야 유수프 오마르(16)는 평생 그런 폐허 속에서 달리고 또 달렸다. 폭력과 빈곤과 이슬람주의 편견 등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다 무너져 가는 수도 모가디슈의 운동장을 달리던 소녀는 올초 국가대표로 뽑혔다. 그와 남자 육상선수 2명이 소말리아 선수단의 전부다.
이슬람주의 군벌 세력들은 여자가 스포츠를 하면 안된다며 그가 훈련하는 것조차 막았다. 그는 <비비시>에 “아침 일찍 연습하러 갈 때면, 정부군, 무장 군벌, 이티오피아군들이 가지 못하게 막곤 했다. 모가디슈 거리에서 달리다가 위협을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사미야는 “소말리아 사람들은 운동이나 음악을 하는 여자는 짧고 비치는 옷을 입기 때문에 더럽다고 여긴다”고 말한다.
아버지가 오래 전 세상을 떠난 뒤 그는 오두막집에서 국가대표 운동선수였던 어머니와 함께 산다. 그의 가족에게 사미야의 재능은 빈곤과 힘겨운 삶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다.
“이길 가능성은 신경 쓰지 않는다. 이렇게 중요한 행사에서 나라를 대표하게 되서 행복하다”는 그는 “지금으로선 내가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한다.
▲ 운동화 살 돈 없는 마라토너 = 24일 캄보디아 대표로 마라톤에 출전하는 헴 번팅(25)의 최고 기록은 2시간26분28초, 세계기록 2시간4분26초와는 한참 거리가 있다.
그는 다른 선수들과 함께 국립 경기장 한켠의 낡은 방에서 산다. 이른 새벽부터 연습하러 나가야 하기에 다른 선수들의 방해 없이 푹 자고 쉴 수 있는 방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게 그의 희망이다.
1인당 국민소득 380달러의 캄보디아에서 그는 한달 50달러 정도를 생활비로 받는다고 <비비시>는 전했다. 마라톤용 운동화 값의 절반도 안되는 돈이다. 캄보디아 마라톤 선수를 후원하려는 기업도 없다. 전지훈련은 꿈도 꿀 수 없는 그는 차와 오토바이, 자동차 매연과 먼지로 가득찬 프놈펜 거리를 달리며 연습해 왔다. ‘베이징의 오염된 공기가 선수 생명에 영향을 준다’는 유명 마라톤 선수들과 달리 그는 이 점은 걱정하지 않는다.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동남아시아대회 장거리 종목에서 은메달과 동메달을 따낸 번팅은 “조국을 위해 달린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라고 말한다.
▲ 자동차 파는 레바논 사격선수 = 15일 올림픽 사격장에 서는 레바논 사격 선수 지아드 리차(40)는 내전(1975~1990)과 잇따른 전쟁 속에서 수 십년을 화약 냄새와 함께 살았다. 국가와 기업으로부터 아낌없는 지원을 받는 유럽, 미국의 사격 선수들과 달리 그는 자동차 판매상으로 생계를 유지하며, 남는 시간에 사격을 한다.
훈련과 총탄을 사는 비용도 모두 스스로 해결했다. 2006년 이스라엘 침공 뒤 통과된 유엔 결의안에 따라 미국이나 유럽산 무기는 레바논에 들어올 수 없다. 그는 터키와 사이프러스에서 총과 총탄을 구해와야 했다. 레바논의 불안한 정세 탓에 훈련장으로 가는 길에 검문소가 들어섰고, 그는 총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계속 통행 금지를 당했다.
“우린 태어날 때부터 사냥꾼으로 태어난다. 어느 집에나 적어도 한자루의 총이 있다. 나는 그 총을 평화롭게 쓰고 싶다” 그는 자신이 올림픽에서 성공한다면 조국의 상처를 치유하는 데도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진 총으로 평화롭게 운동을 할 수도 있다. 전쟁이라면 신물 날 만큼 겪었다. 우리 모두 가족, 친구들과 함께 평화롭게 살고 싶다.”
▲ “다음 올림픽까지 살아있을지” = 육상 100m, 200m 달리기에 출전하는 다나 후세인(21)은 이라크 대표단 4명중 유일한 여자 선수다.
올림픽 경기장에 서는 것 자체가 그에겐 기적이다. 2003년 미국의 이라크 점령 이후, 그는 수도 없이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섰다. 2006년 바그다드대학에서 연습하다 날아온 총탄이 간발의 차이로 빗나가 목숨을 건졌고, 훈련 장소 바로 옆에 폭탄이 떨어지기도 했다. 그 사이 태권도팀이 실종된 뒤 1년 만에 주검으로 발견되고, 사이클과 레슬링 코치도 살해됐다. 후세인은 “이런 환경에서 살아남아 훈련을 하려면 용감해져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6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이라크 정부가 이라크올림픽위원회에 부당하게 개입했다며 이라크팀의 베이징 올림픽 출전 자격을 박탈했을 때 후세인은 눈물 범벅이 돼 울었다. 코치가 다음 올림픽에 나가면 된다고 위로하자 그는 “이렇게 무시무시한 상황에서 2012년까지 살아 남을 거라고 누가 말할 수 있느냐”며 눈물을 멈추지 못했다고 <시엔엔>은 전했다.
올림픽 개막을 일주일쯤 앞두고 국제올림픽위원회가 극적으로 이라크팀 출전을 허용하면서 후세인은 꿈에 그리던 올림픽 경기장에 서게 됐다.베이징/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 사진 <비비시>, <에이피> 연합
소말리아 육상선수 사미야 유수프 오마르
캄보디아 마라톤 선수 헴 번팅
이라크 육상선수 다나 후세인
이슈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