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아 선수가 29일(한국시각) 열린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싱글에서 사상 최초로 200점을 넘어서며 우승(207.71점)한 뒤 시상대에서 감격의 눈물을 흘리고 있다. 로스앤젤레스/AP 연합
김연아, 세계선수권 첫 우승
‘그랜드슬램’ 올림픽만 남아
‘그랜드슬램’ 올림픽만 남아
‘피겨 여왕’도 펑펑 솟는 눈물을 어쩌지 못했다. 부러 미소를 지었지만 애국가 선율을 따라 눈물은 시상대에 선 그의 뺨을 타고 흘렀다. 긴 고통 뒤에 온 환희처럼, 봄처녀 김연아(19·고려대)가 세계 무대에서 확 피었다.
절정의 김연아 선수가 29일(한국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 스테이플스센터에서 열린 200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세계피겨선수권대회 여자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131.59점을 얻어, 전날 쇼트프로그램(76.12점) 점수 합계 207.71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여자 선수가 ‘마의 200점’을 넘은 것은 2002년 현 채점방식 도입 뒤 처음이며 세계 최고 기록이다. 라이벌 아사다 마오(총점 188.09점)는 4위에 그쳤다.
고모의 낡은 스케이트를 신고 피겨를 시작한 여섯살(1996년) 아이. 당돌한 ‘천재’는 이제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와 자신만만한 연기로 세계 팬들을 사로잡았다. 김연아에게 안무를 가르친 데이비드 윌슨(캐나다)은 “경기를 보고 소름이 돋았다. 내가 만든 프로그램의 100% 이상을 보여줬다”며 경탄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3회전(트리플) 점프를 소화한 김연아는 철의 의지를 지녔다. 중학 시절 인대가 늘어나 점프를 제대로 할 수 없었을 때다. 어머니 박미희(51)씨는 “당시 아프다고 울부짖는 딸을 찢어지는 마음으로 얼음판 위에 다시 세웠다”고 회고했다. 낮에는 태릉선수촌, 밤에는 과천시민회관 빙상장에서 ‘점프의 교과서’는 완성됐다.
2005년 11월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정상은 세계 무대 첫 쾌거. 김연아는 이때부터 각종 대회에서 국내 ‘최초’라는 접두어를 달고 다녔다. 어머니와 전 코치의 갈등, 고질적인 고관절 부상으로 가슴앓이도 많았다. 2007년에는 극심한 허리 통증으로, 지난해에는 고관절 통증으로 세계선수권에서 모두 동메달에 그쳤다. 지난해 아사다 마오가 금메달을 걸 때는 옆에서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아문 상처에 돋은 굳은살처럼 소녀는 당당히 여왕 자리에 등극했다. 브라이언 오서(캐나다) 코치 등은 “김연아는 최고 중 최고다. 예전에는 힘들어도 무조건 참고 훈련을 했지만 지금은 자신의 몸 상태를 스스로 점검하면서 피겨를 즐기고 있다”고 칭찬했다.
남은 목표는 2010 밴쿠버 겨울올림픽 금메달. 그랑프리 파이널, 4대륙 대회, 세계선수권을 제패한 그가 올림픽 정상까지 오르면 ‘그랜드슬램’의 영광을 달성한다. 김 선수는 “이번 대회는 준비를 열심히 했고 결과도 좋았다. 겨울올림픽을 1년 앞두고 좋은 실전 경험을 치렀다”며 기뻐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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