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롤러코스터 탄 농구대통령, 명장 반열에…

등록 2009-05-03 20:14

허재 케이씨씨 감독이 지난 1일 전주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 서울 삼성과의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허재 케이씨씨 감독이 지난 1일 전주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농구 챔피언결정전 7차전 서울 삼성과의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작전을 지시하고 있다. 전주/연합뉴스
올시즌 연패·불화 딛고 벼랑끝 승부로 우승
“이제 다시 시작…다른 감독 장점 본받을 것”
허재(44) 감독은 제이슨 로빈슨을 호명했다. 그런데 장내가 술렁였다. 그가 이미 드래프트장을 떠나고 없었던 것이다. 그의 고향 휴스턴행 마지막 비행기를 놓칠까봐였다. 케이비엘(KBL·한국농구연맹)은 부랴부랴 대책회의를 열어 케이씨씨(KCC)의 2라운드(전체 18순위) 지명 순서를 맨 마지막으로 돌리고 30분 안에 오지 않으면 로빈슨을 지명할 수 없도록 했다.

로빈슨에게 휴대전화로 연락했지만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허 감독이 다시 마이크 앞에 섰다. 이제 다른 선수를 호명할 수밖에 없었다. 망설였다. 그 때였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로빈슨이 문을 열고 나타났다. 모두들 그에게 박수를 보냈다. 로빈슨은 그렇게 극적으로 허 감독의 품에 안겼다. 2007년 7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프로농구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 현장에서 있었던 일이다. 허 감독은 “대체 선수 둘을 놓고 고민하느라고 빨리 호명을 못한 게 오히려 잘 됐다”고 회고했다.

이 사건은 허 감독의 마치 드라마같은 농구 인생을 설명해 주는 장면이다. 그는 선수 시절 언제나 정상에 있었다. 용산고-중앙대-기아를 거치며 우승을 밥 먹듯 했다. 대학 4학년 때 75득점과 95년 농구대잔치 삼성전자와의 챔프 4차전에서 종료 7분 전부터 연속 17득점 역전승은 지금도 전설처럼 전해 내려온다. ‘농구 대통령’이라는 별명도 그 즈음 붙었다.

하지만 그는 늘 롤러코스트를 탔다. 음주운전 등으로 잠시 코트를 떠나기도 했고, 부산 기아 소속이던 프로농구 원년(1997년) 챔피언전 마지막 순간에는 당시 최인선 감독과의 불화로 벤치를 지켜야 했다. 그리고 끝내 재기에 성공해 원주 티지(TG)로 옮겨 선수 생활 마지막 우승을 맛봤다.

허 감독의 지도자 인생은 더 극적이다. 2005년 케이씨씨 감독에 취임한 그는 첫해 팀을 4강에 올려놓았지만 이듬해 꼴찌로 추락했다. 그는 “그 때부터 머리카락이 빠지고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 시즌엔 정규리그 2위를 차지하고도 4강전에서 라이벌 삼성에게 3전 전패의 수모를 당했다.

올 시즌에는 기존 서장훈에 하승진까지 가세하며 주위로부터 “우승은 떼논 당상”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에겐 큰 부담이었다. 하승진의 항명 파동, 서장훈과의 불화가 겹치며 8연패를 당했다. 9위까지 추락했다. “이러다 허 감독 잘리겠다”는 말까지 들렸다. 소주 2병을 마셔야 잠이 올 정도였다. 그는 “올해는 정말 우여곡절이 많았다”며 진저리를 쳤다.

허 감독은 과감하게 서장훈을 트레이드해 돌파구를 열었다. 그리고 6강과 4강, 챔피언전까지 모두 마지막 벼랑 끝 승부를 벌여 마침내 정상에 올랐다.

승부사 기질을 유감없이 보여준 허 감독은 이미 ‘내일’을 구상하고 있다. 그는 “이제 다시 시작이다. 다른 감독들의 장점을 배워 선수들을 잘 가르치겠다”고 했다. 극적인 우승이었지만 지난 1일 밤 우승 축하연 자리에서도 흐트러짐이 없었다. 그리고 한마디했다. “이렇게 좋은 자리는 앞으로도 또 만들어야죠.”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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