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의 세계챔피언과 동양챔피언 30여명이 호세 술라이만 세계권투평의회(WBC) 회장의 방한을 계기로 20일 서울 중구 세종호텔에 모였다. 뒷줄 왼쪽부터 이형철, 허준, 김철호, 김종길, 장정구, 최재원, 이일복, 황준석, 조인주, 서성인, 박종팔, 유제두, 김태식씨. 앞줄 왼쪽부터 세계권투평의회 홍보대사인 리투아니아 출신의 옥사나 세메니시나, 김철기 한국권투위원회 회장, 술라이만 회장, 정동일 서울 중구청장.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술라이만 WBC 회장 방한
전·현 챔피언들 한자리에
전·현 챔피언들 한자리에
“어이! 짱구(장정구) 오랜만이야.” “종팔이 형 반가워요.”
‘왕년의 주먹’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유제두(61), 김태식(53), 박종팔(51), 장정구(46), 문성길(46) 등 한 시절을 풍미했던 세계챔피언과 동양챔피언 30여명이 호세 술레이만 세계권투평의회(WBC) 회장의 방한을 계기로 20일 서울 명동 세종호텔에서 자리를 함께 했다. K1으로 전향한 최용수(37)와 지인진(36)의 모습도 보였고, 박지현(24), 허은영(26), 김지영(27) 등 현역 여자챔피언 5명 중 3명도 참석했다.
환갑이 지난 유제두씨는 “오랜만에 후배들을 만나니 반갑다”며 “오늘 같은 날은 말 잘하는 (홍)수환이가 왔어야 하는데…”라며 웃었다. ‘돌주먹’ 문성길씨도 “다들 모이니 정말 기분좋다”고 했다. 국제복싱연맹(IBF) 여자챔피언 박지현은 “대선배들을 직접 뵈니 영광”이라며 반겼다.
반가움은 추억으로 이어졌다. 장정구는 현역시절 유명우(45)와의 라이벌전 무산에 대해 “대전료 문제 때문에 성사되지 못했다”며 아쉬워했다. 유제두씨가 1975년 일본에서 와지마 고이치를 눕히고 세계복싱협회(WBA) 주니어미들급 챔피언에 올랐던 얘기도 화제에 올랐다. ‘세계복싱계의 대부’로 불리는 술레이만 회장은 “지인진 선수가 런던에서 상대를 멋지게 때려눕힌 시합을 지금도 기억하고 있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웃음도 잠시뿐. 이내 한국 프로복싱의 현실에 대한 안타까움이 쏟아졌다. 장정구씨는 “요즘 다들 골프시키려고 하지 누가 복싱시키려고 하나. 어른들부터 생각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5년 동안 복싱체육관을 운영했던 문성길씨는 “그저 취미로 배울 뿐, 세계챔피언이 되겠다는 목표의식을 가진 선수가 별로 없다. 스파링(연습경기)하다가 맞고 누우면 그 다음날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했다. 술레이만 회장은 “과거 한국 선수들은 사자처럼 용맹한 특별한 심장을 가지고 있었다”며 “세계챔피언 한 명 없이 바닥으로 떨어진 한국 프로복싱이 안타깝고 궁금하기 짝이 없다. ‘영웅’을 다시 찾아달라”고 호소했다.
대안도 나왔다. 지인진은 “헝그리 정신만 강조하지 말고 시대에 맞는 체계적인 방식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고, 문성길씨는 “국가적인 차원에서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철기 한국권투위원회 회장은 “복싱은 더이상 배고픈 운동이 아니다. 일본은 세계챔피언 6명을 보유하고 있다”며“1981년 이후 28년 만에 오는 11월 제주에서 열리는 세계권투평의회 한국총회를 역사적인 기회로 삼아 다시 뛰자”고 강조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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