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오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 20여명의 건장한 남자 배구선수들이 모여들었다. 가칭 ‘대한민국 프로배구 발전을 염원하는 선수들의 모임’의 임시대표 석진욱(삼성화재)이 회견문을 읽었다. “배구선수들은 프로선수도 아니고 실업선수도 아닌 상태에서 정체성을 잃은 채 구단의 용도에 따라 선택되고 버려질 위기에 처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배구선수들이 집단적으로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05년 프로배구 출범 전 몇몇 선수들이 모임을 만들려고 시도했지만, 구단들의 반대와 선수들 사이의 의견조율 실패로 시도에 그쳤다. 이번에도 몇몇 구단들이 만류해, 회견장에 참석한 선수가 예상보다 적었다. 선수들을 돕고 있는 넥스트로법률사무소는 101명 가운데 71명이 성명에 동참했다고 밝혔다.
배구는 야구, 축구, 농구와 함께 4대 프로스포츠로 꼽히지만, 연봉은 실업선수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 최고연봉이 1억5000만원으로 야구(7억원), 축구(수당 포함 10억원 안팎), 농구(7억1000만원)에 견줘 턱없이 낮다. 심지어 여자농구(2억3500만원)에도 못 미친다. 1억5000만원도 2007년 여자배구에 자유계약(FA) 제도가 도입되면서 구단간 경쟁으로 연봉이 높아지자 함께 올라간 금액이다. 샐러리캡과 신인선수 계약금 폐지로 연봉 상승이 쉽지 않다.
선수들의 이적도 자유롭지 않다. 계약이 끝난 고참 선수들이 다른 팀으로 이적하려 해도 구단의 이적동의서가 필요하다. 이적하면 부메랑이 될 수 있어 대부분의 구단은 이적동의서 대신 지도자 수업을 권하며 은퇴를 종용하곤 한다. 신진식, 방신봉 등이 이런 사례였다.
배구선수 생명은 다른 스포츠에 견줘 짧다. 그런데도, 처우는 가장 열악하다. 선수들이 바라는 것은 프로 최고 대우가 아니다. 다만, 프로선수면서도 대우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현실이 조금이라도 개선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 첫걸음이 자유계약제도다. 6월2일 열리는 배구연맹 실무회의에서 이들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결론이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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