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
며칠 전 경기에서 연속안타를 허용한 게 떠올라 “너무 두들겨 맞는다”고 했더니 돌아오는 답은 “그래도 행복해요”다. 5년 전만 해도 웬만해선 안타를 맞지 않던 그였기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시 한번 “너무 행복해요”라며 씨익 웃는다. 거짓없는 미소였다.
이동현(26)은 엘지팬들에게는 ‘추억’이자 ‘로망’이다. 2002년 엘지가 마지막으로 포시트시즌에 진출하는 데 최고의 불펜투수 역할을 했다. 한국시리즈 6차전 도중 라커룸에 쓰러져 가쁜 숨을 몰아쉴 때까지 그는 던지고, 또 던졌다. 만약 그 때 조금만 던졌다면, 그리고 2004년에 덜 등판했다면 다른 팔 인대를 떼어내 이어붙이는 대수술을 3차례나 받지 않아도 됐을까. 그는 말한다. “고등학교 때부터 많이 던졌기 때문에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어요. 내 팔이 고장났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죠.”
재활은 자신과의 혹독한 싸움이다. 눈을 뜨면 쿡쿡 쑤셔오는 아픈 팔을 하루 수백 번 만져주면서 달래야 하고, 그만두고 싶은 마음을 다독여야 한다. 지리하게 수천, 수만 번 반복되는 운동에 심신은 절로 지쳐간다. 그런 과정을 그는 4년이나 겪었다. 힘드니까 는 것은 눈물이었다. 화가 나 울었고, 절망적이어서 울었다. 3번째 수술을 앞두고는 심각하게 은퇴도 생각했다.
그때, 그를 붙든 이가 김병곤 트레이너였다. 김 트레이너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해보자”고 했다. 그도 잠실구장 관중석 202번 출구 옆에서 동료들이 야구하는 모습을 훔쳐보다가 그렇게 그의 야구 인생에 마침표를 찍기는 싫었다. 한 번쯤은 더 라커룸에서 쓰러지더라도 잠실구장 마운드 위에서 공을 뿌려보고 싶었다. 5월20일 광주 기아전에서 4년9개월 만의 1군 등판을 마치고 그는 김 트레이너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형, 나 다시 공 던질 수 있게 해줘서 고마워.”
이동현은 지금 행복하다. 박빙의 승부 때보다 패전 처리로 등판할 때가 더 잦지만, 공을 던질 수 있어서, 그리고 아웃카운트를 잡을 수 있어서 그는 행복하기만 하다. 행복하다는 생각이 그 동안의 세월을 잊게 만든다. 3번째 수술 뒤 대선배인 이상훈이 그에게 했던 말은 그의 머릿속을 계속 맴돈다. “절대 스스로 야구를 포기하지는 말아라. 팔이 끊어질 때까지 마운드에서 버텨라.” 그는 오늘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오른다.
김양희 기자whizzer4@hani.co.kr
김양희 기자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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