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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운전 복서의 눈물

등록 2009-06-19 18:42수정 2009-06-19 22:01

19일 오산시민회관에서 열린 WBC 인터내셔널 페더급 타이틀매치 경기에서 한국 송인석(왼쪽)과 태국 라차몽콜 코키에트짐이 주먹을 교환하고 있다. 오산/연합뉴스
19일 오산시민회관에서 열린 WBC 인터내셔널 페더급 타이틀매치 경기에서 한국 송인석(왼쪽)과 태국 라차몽콜 코키에트짐이 주먹을 교환하고 있다. 오산/연합뉴스
송인석, WBC 페더급 챔피언결정전 6회 KO패
공장일 하다 뒤늦게 입문…낮엔 훈련, 밤엔 운전
사각의 링 한 모퉁이에 ‘1588-○○○○ 대리운전’이라고 새겨진 광고가 눈에 띄었다. 홍코너 선수 대기실에서 만난 송인석(29·시화 이철형체육관)의 트레이닝복 등에도 ‘대리운전’ 광고문구가 붙어 있었다.

송인석의 직업은 프로복서이자 대리운전 기사다. 오후에 글러브를 끼고 3~4시간씩 땀을 흘린 뒤 밤 10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4~5시까지 핸들을 잡는다. 이런 생활이 벌써 5년째다.

그의 고향은 전북 남원.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교 졸업 뒤 경기도 안산 시화공단에서 연마공으로 일했다. 그러던 어느날 복싱체육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군 복무도 마친 늦은 나이였다. “그냥 내 성격과 맞는 운동 같아서” 글러브를 끼고 샌드백을 두드렸다. “상대를 쓰러뜨릴 때 통쾌한 기분이 좋더라구요.”

그러나 2005년과 2006년 신인왕에 도전했다가 연거푸 쓴잔을 마셨다. ‘이래선 안되겠다’고 생각했다. 연마공 일을 그만뒀다. 낮에 체육관에서 더 많은 땀을 흘리기 위해서였다. 밤에 대리운전 일을 시작했다. 마침내 2007년 2월 제34회 신인왕전 밴텀급 챔피언에 올랐다. 같은해 7월 WBO 아시아퍼시픽 밴텀급 타이틀 도전을 위해 필리핀 원정에 나섰다. 챔피언 로베르토 알라닉을 맞아 10라운드까지 앞섰다. 그러나 11회 1분55초에 TKO패를 당했다. 지난해 9월에는 유망주 손창현(대구영남체육관)에게 아깝게 10회 판정으로 졌다. 13전 9승(4KO)4패. 고난의 시간이었다. 그러나 그는 “아깝게 져서 포기할 수 없었다”고 했다. 그 때 기회가 왔다. WBC 인터내셔널 페더급 타이틀매치 챔피언결정전에 나설 수 있게 됐다. 부상당한 다른 선수 대신 잡은 기회였다.

19일 경기도 오산시민회관에서 열린 타이틀전. 경기 전 송인석은 애써 담담한 표정이었다. 대기실에서 고개를 무릎에 묻고 조용히 기도를 했다. 그는 “꿈도 안 꾸고 잠도 잘 잤다”고 했다. 경기 감독관이 붕대를 감은 그의 양 손등에 ‘KO’라고 적었다.

마침내 공이 울렸다. 도망갈 곳이 없는 사각의 링. 상대는 8전 7승(3KO)1패의 왼손잡이 라차몽콜 코키에트짐(26·타이). 큰 키에 까만 얼굴이 다부져 보였다. 송인석은 침착했다. 그러나 무에타이로 단련된 상대의 펀치는 매서웠다. 송인석의 얼굴이 점점 벌겋게 달아올랐다. 2회에 다운을 당했다. 불도저처럼 밀고 들어오는 상대의 빈 틈을 노려 유효 펀치를 날렸다. 그러나 6회 53초만에 또 다운을 당했고, 더는 경기를 할 수 없었다.

송인석의 매니저 이철형 관장은 “그래도 잘 싸웠다”고 격려했다. 송인석은 말없이 사각의 링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패배는 있어도 좌절은 없다”는 듯 그의 눈빛만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오산/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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