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 자료사진, KBL 제공
시속 110km 핸드볼, 150km 야구, 180km 하키…
눈에 맞아 실명 위기도…“무방비상태선 아찔해”
눈에 맞아 실명 위기도…“무방비상태선 아찔해”
2000년 시드니올림픽 때 핸드볼 국가대표 골키퍼였던 한경태(34)는 연습경기 도중 상대 공격수가 던진 공에 눈을 맞아 실명할 뻔했다. 공격수가 슈팅한 공의 속도는 시속 100~110㎞에 이른다. 이 공을 불과 6~7m 앞에서 맨몸으로 막아야 하는 핸드볼 골키퍼들은 ‘공포’와 맞서는 대표적인 선수들이다.
핸드볼 경기 도중 골키퍼가 상대 공격수가 던진 공에 얼굴을 맞고 코트에 나뒹구는 장면은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지난 9월 핸드볼 슈퍼리그 결승전에서 2m3의 국내 최장신 윤경신(36·두산)의 슛을 막아야 했던 골키퍼 강일구(33·인천도개공)는 “2m가 넘는 경신이 형이 점프해서 공을 던진다고 상상해 보라. 얼마나 무섭겠느냐”며 웃음 지었다.
야구에서 시속 150㎞ 안팎의 강속구와 맞서는 타자들도 비슷한 심정이다. 몸 맞는 공으로 큰 부상을 당한 경험이 있는 선수라면 두려움은 극에 달한다. 1997년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했다가 일본 투수들의 집요한 몸 쪽 공략에 시달렸던 이종범(39·KIA)은 투구에 팔꿈치를 맞아 큰 부상을 당한 뒤 한동안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투구에 얼굴을 맞았던 심정수(34·은퇴)도 부상 이후 얼굴의 절반을 가리는 특수 헬멧을 쓰고 타석에 들어서곤 했다.
헬멧이나 얼굴 보호대도 없이 딱딱한 스틱으로 딱딱한 석고공을 다루는 필드하키 선수들도 공포와 싸운다. 필드하키는 신체 접촉에 따른 부상은 거의 없고, 공이나 스틱에 맞아 다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일채 대한하키협회 운영부장은 “156~163g의 석고로 만든 공이 시속 180㎞로 날아온다고 생각해 보라. 웬만한 공은 운동신경으로 피할 수 있지만 무방비 상태에서 날아오면 아찔하다”며 진저리를 쳤다.
시속 100~200㎞의 스피드를 내는 스키, 스키점프, 봅슬레이 등의 겨울스포츠도 선수들이 공포를 많이 느끼는 종목이다. 스키 활강 종목의 경우 시속 90~140㎞로 눈밭을 질주하는데, 눈이 펑펑 내리는 등 날씨가 좋지 않아 앞이 보이지 않을 때도 있다. 이기홍 국가대표팀 스키 감독은 “기상이 좋지 않다고 속도를 늦출 순 없다”며 “그럴 땐 정말 엄청난 공포가 몰려오지만 ‘깡’으로 버틴다”고 설명했다.
높이 200m가 넘는 고공에서 출발하는 스키점프는 고소공포와 맞서야 한다. 김흥수 스키점프 국가대표팀 코치는 “낮은 곳부터 단계별로 올라가기 때문에 고소공포는 자연히 극복된다”며 “하지만 초보자가 출발대에 올라가면 어질어질하고 불안과 두려움에 떤다”고 말했다.
신체 접촉이 심한 농구는 상대 선수의 ‘팔꿈치 공포’와 싸워야 한다. 얼굴을 다쳐 보호대를 착용하고 나서는 선수들은 대부분 상대 팔꿈치에 가격당한 경우다. 상대 선수에게 코뼈를 맞아 한동안 얼굴 보호대를 착용하고 경기에 나섰던 황진원(31·안양 KT&G)은 “지금은 두려움이 사라졌지만, 부상 회복 직후에는 상대 선수와 접촉할 때마다 또 다칠까봐 신경이 곤두섰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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