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 미국프로농구(NBA) 역사상 가장 키가 작은 선수는 키 160㎝의 타이론 보그스(43)다. 그는 빠른 발과 현란한 드리블, 악착같은 수비로 장신들을 농락했다. 1988년부터 샬럿 호니츠(현 뉴올리언스 호니츠)에서 7시즌을 뛸 때 팀에서 가장 많은 출장시간을 기록했고, 팀의 플레이오프 단일경기 최다 도움주기(15개) 기록도 한동안 보유했다. 키 169cm의 스퍼드 웹(45)은 1986년 올스타전 덩크왕에 올라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는 “남들이 나를 넘어 덩크하는 게 너무 싫어 맹훈련을 했고, 마침내 나를 뛰어넘었다”는 감동적인 소감을 밝혔다. 유도훈 인천 전자랜드 감독대행은 현역 시절 프로필에 키를 176㎝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키는 정확히 172.6㎝다. 그는 “반올림하면 173㎝”라며 웃었다. 그는 요즘 전자랜드 2군을 맡은 김태진(35) 코치와 이따금 ‘도토리 키재기’를 한다. 올해 은퇴한 김 코치는 선수 시절 프로필에 173.7㎝라고 적었지만, 유 감독대행은 “나보다 확실히 작다”며 웃음짓는다. 키는 작지만 유 감독대행은 현역 시절 ‘코트의 여우’로 일컬어지는 영리한 플레이로 박수를 받았고, 김 코치도 프로농구에서 12시즌 동안 장수하며 코트를 누볐다. 창원 엘지(LG) 이현민(26)도 프로필에는 174㎝로 나오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작다. 그도 새내기 시절이던 2006년 당시 엘지 코치였던 유 감독대행과 이따금 키재기를 하며 서로 자신이 더 크다고 우겼다. 이현민 역시 2006~2007 시즌 신인상에 빛나는, 매서운 ‘작은 고추’다. 프로필에 나온 키는 가드일수록 ‘뻥튀기’가 조금 더 심하다. 이번 시즌 프로필에도 주희정(32·서울 SK)과 양동근(울산 모비스)은 181㎝, 신기성(부산 KT)은 180㎝, 김승현(31·대구 오리온스)은 178㎝로 기록돼 있지만 실제 키는 조금 더 작다. 그러나 이들 넷은 정규리그 최우수선수(MVP) 출신의 특급 가드들이다. 이번 시즌에도 도움주기 부문 5걸에 나란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프로농구 역대 정규리그 최우수선수상을 받은 적이 있는 10명 중 무려 7명이 실제 키가 180㎝ 이하다. 요즘 논란 많은 이른바 ‘루저녀’의 기준대로라면 ‘루저(loser·패배자)’인 셈이다.
하지만 이들은 “농구는 신장(height)이 아니라, 심장(heart)으로 하는 것”이라는 앨런 아이버슨의 말을 증명하고 있다. 루저가 아닌, 진정한 코트의 승리자(winner)들이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