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 울산 모비스 박종천(30·192㎝)은 목포상고를 나왔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동문이다. 그런데 그는 전라도 사투리를 전혀 쓰지 않는다. 그의 고향은 충남 논산이고, 어렸을 때 서울로 이사했다. 소년기는 경기도 안산에서 보냈다. 안산 군자초·중학교를 나왔다. 농구를 하고 싶었지만 학교엔 농구부가 없었다. 길거리 농구에 매달렸다. 성이 차지 않았다. 그래서 찾아간 곳이 멀고 먼 전남 목포다. 박종천은 최부영 감독의 눈에 띄어 경희대로 스카우트됐다. 목포상고 농구부는 박종천이 졸업하고 4년 뒤인 2003년 해체됐다. 우승연(25·서울 삼성)이 마지막 목포상고 농구부 출신이다. 박종천은 경희대 졸업반이던 2003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삼성에 입단했다. 당시 김동광 삼성 감독은 연세대 장신 슈터 김동우(30·196㎝)를 모비스에 빼앗기고도 싫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박종천의 가능성을 눈여겨봤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종천은 벤치에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는 “프로는 대학에서 뛰던 스타일과 확연히 달랐다”며 적응 실패를 시인했다. 상무에 다녀왔다. 어느덧 나이는 서른줄에 들어섰다. 지난 6월, 모비스로 트레이드됐다. 대학 시절 ‘장신 슈터’로 비교되던 김동우가 있는 곳이었다. 남은 계약기간도 1년이었다.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독기를 품었다. 훈련량을 엄청나게 늘렸다. 링거를 두 차례나 맞았다. 그는 “여기서 그만두면 내 농구 인생은 끝이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시즌이 시작됐다. 초반 몇 경기에 나섰지만 마음대로 풀리지 않았다. 지난 4년 동안 정식경기에 뛰어본 적이 없는 그에겐 많은 관중이 지켜보는 코트가 낯설었다. 하지만 1라운드 마지막 경기부터 갈고닦은 실력이 빛을 발했다. 지금까지 시즌 21경기에 모두 나서 평균 20분31초를 뛰었다. 팀내 다섯 번째로 많고, 김동우보다 출장시간이 길다. 길고 길었던 식스맨에서 벗어나 마침내 주전이 된 것이다. 위기 때마다 외곽슛을 시원하게 터뜨린다. 최근 몇 경기 부진하다 싶더니 지난 6일 서울 에스케이(SK)전에서는 2쿼터에서만 13점을 쏟아부었다. 2라운드 초반만 해도 자신 있느냐는 질문에 “해 봐야죠. 뭐 …”라며 말끝을 흐리던 그는 이제 완전히 자신감을 찾은 모습이다. 모비스는 올 시즌 1위를 질주하고 있다. 지난해와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박종천이 있다는 것이다. 여름내 입에 단내가 날 정도로 자신을 단련한 땀의 결과다. 김동훈 기자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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