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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포츠일반

“엄마는 서른여섯에 도전을 배웠단다”

등록 2009-12-11 09:53

[36.5℃ 데이트] KT&G 맏언니 장소연
“하고 싶은 걸 하라” 남편 말에 4년 만에 코트 복귀
1점도 못올릴 때도…젊을 때보다 땀흘리며 적응
한참 수다를 떨었다. 주제는 육아 문제였다. 엄마끼리는 통하는 게 있다. “안 떨어지려고 해서 집 밖으로 나오려면 007 작전을 펴야 해요. 평소에는 엄마 없어도 할머니랑 잘 노는데 저랑만 있으면 옆에 착 달라붙어서 안 떨어져요.” 일 얘기를 꺼냈다. ‘엄마’는 곧바로 ‘프로 선수’로 변한다. 장소연(36). 실업배구 시절 가로막기 여왕이었던 그는 2005년 은퇴 뒤 4년 만에 케이티앤지(KT&G) 유니폼을 입고 코트로 돌아왔다. 국내 여자배구 선수 중 유일한 ‘엄마 선수’다.

두 살 연하 남편 김동한(개인사업)씨가 코트 복귀를 부추겼다. 남편은 “자기는 코트 위에 있을 때가 제일 예쁘다”며 “하고 싶어도 못 하는 사람이 많은데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은 거 해야지”라고 그를 꼬드겼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배구를 함께 했던 20년지기 친구는 말렸다. “그 많은 스트레스를 어떻게 감내하려 하느냐”고 했다. 시어머니와 친정 어머니도 마찬가지였다. “네가 안 벌어도 먹고 살만하고 어깨까지 아픈데 왜 사서 고생하느냐”고 했다. 결정은 전적으로 그의 몫이었다. 처음에는 ‘못하면 어떡하지’ 걱정도 됐다. 하지만 ‘잘하든 못하든 도전하는 자세가 중요하니까’라는 마음에 신인 드래프트를 신청했고, 케이티앤지가 그를 지목했다.

장소연과 갓 입단한 신인 선수의 나이 차는 16살. 장소연 다음으로 팀내 고참인 김사니, 김세영과도 7살 차이가 난다. 그래서 후배들은 그를 ‘장샘(장선생님)’으로 부른다. 호칭 때문인지 책임감은 더 커졌다. “나이값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해요. 어린 선수들에게 귀감이 돼야 하니까.” 하지만 의욕만 강하지 30대 중반의 몸은 예전같지 않다. 그동안 전국체전 등에는 참가했으나 체계적인 훈련을 받지 못한 게 크다. 게다가 어깨 통증까지 있다. 배구 환경도 많이 달라졌다. 높이도 훨씬 높아졌고, 파워도 더 세졌다. 예전에는 드물던 스파이크 서브도 흔해졌다. 그가 코트를 비웠던 4년의 세월은 그에게 낯설음을 안겨줬다.

지난 1일 열린 현대건설전 0-3 완패는 충격이었다. 예전에는 경기를 하면 당연히 이긴다고 생각했다. 그의 소속팀은 늘 연승을 달렸고 우승도 몇 차례나 했다. 하지만 그는 이날 손가락을 다친 주전 센터 김세영 대신 선발로 출전해 단 1점도 못 올렸다. “맏언니로써 뭔가 했어야 했는데 못 했다”는 자괴감이 컸다. 그날 밤, 그는 단 한숨도 못 잤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미국과의 4강 진출전에서 다 잡았던 경기를 놓친 뒤, 분한 마음에 “배구를 관두겠다”며 한 달동안 배구공을 놓았을 정도로 승부욕이 강한 그였다. “예전에는 경기에 지면 아빠를 붙잡고 울었는데, 지금은 남편한테 화풀이를 해요.” 남편은 싫은 기색 없이 그의 투정을 다 받아준다. 다행히 현대건설전 이후 열린 흥국생명, 도로공사전에는 그는 왕년의 가로막기 실력을 보여주면서 맏언니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그는 세 살바기 딸, 고은이와는 영상통화를 하지 않는다. 영상통화를 하고나면 고은이가 시무룩해지기 때문이다. 대신 남편이 가끔 보내주는 동영상 파일로 딸의 모습을 본다. 하루에 몇 번을 봐도 지겹지가 않다. 합숙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한 달. 그동안 서너 번밖에 고은이를 보지 못했다. “볼 때마다 부쩍부쩍 자라 있다”며 미소짓지만, 미소의 끝에 미안함이 짙게 배어나온다. “고은이가 너무 고마워요. 지금껏 감기도 한 번 안 걸리고 참 착한 딸이예요.” 그는 나중에 고은이가 커서 새로운 도전에 주저할 때 당당히 말해주고 싶다. “엄마는 서른여섯에 다시 시작했고, 그 시작을 책임지기 위해 젊은 시절보다 더 많은 땀을 흘렸다”고.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사진 KT&G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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