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규연(오른쪽)이 13일 경북 경주에서 열린 2009 천하장사 씨름대축제 결승에서 이태현에게 안다리걸기를 시도하고 있다. 경주/연합뉴스
백전노장 황규연-이태현 라이벌전, 흥행 기폭제
황규연 8년만에 천하장사…설날 장사대회 재대결
황규연 8년만에 천하장사…설날 장사대회 재대결
“아이고! 오른쪽 팔은 움직이지도 않아요.”(이태현) “저도 마찬가집니다. 온몸이 안 아픈 곳이 없네요.”(황규연) 14일 전화기 너머로 ‘앓는 소리’부터 했다. 그럴만도 했다. 황규연(34·현대삼호중공업)과 이태현(33·구미시체육회), 두 장사는 259명이 출전한 2009 천하장사 씨름대회에서 1회전부터 결승전까지 무려 9경기를 치렀다. 대부분 자신들보다 10살 이상 어린 후배들을 상대했다. 두 장사는 13일 마지막까지 살아남아 진검승부를 펼쳤다. 지난 10월4일 추석장사 대회 백두급 결승전 맞대결 이후 두 달만의 리턴매치. 두 달 전 우승을 빼앗긴 이태현이 먼저 힘을 냈다. 그러나 황규연이 거푸 세 판을 이기며 또다시 정상에 올랐다. 둘의 몸무게 차이에서 승부가 갈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팽팽하던 둘째 판에서 제한시간 1분이 흘러 황규연이 계체승을 거둔 것. 이태현(142.0㎏)은 황규연(139.1㎏)보다 2.9㎏이 더 무거웠다. 이후 다급해진 이태현이 공격을 서두르다 경기를 그르쳤다. 만 하루가 지났지만 이태현은 분을 참지 못했다. “이길 수 있었는데 …. 너무 화가 납니다.” 황규연은 “태현이하고는 씨름을 그만둬야 안 붙으려나 보다”며 껄껄 웃었다. 두 장사는 라이벌이자 16년 친구 사이다. 황규연이 한 살 많지만 실제로는 한 달 차이밖에 나지 않는다. 황규연이 1975년 12월생이고, 이태현은 1976년 1월생이다. 고교 시절 이태현은 황규연을 ‘누렁이’(이름의 황구와 발음이 비슷해서)라고, 황규연은 이태현을 ‘대가리’(머리가 크다고 해서)라고 부르며 놀렸다. 이태현은 “다 어렸을 때 얘기”라며 “이제는 ‘황 장사’ ‘이 장사’하며 점잖게 부른다”며 웃었다. 이제는 ‘모래판의 황태자’(이태현), ‘모래판의 귀공자’(황규연)라는 멋진 별명이 있다. 1993년 경북 의성고 3학년이던 이태현과 서울 동양공고 3학년이던 황규연은 씨름판에서 샅바를 쥔 채 처음 만났다. 황규연은 고교 시절 이태현의 7개 대회 연속 우승을 가로막은 장본인이다. 라이벌전의 서막이었다.
황규연 VS 이태현
둘은 시련기도 비슷하다. 이태현은 2006년 이종격투기로 눈길을 돌렸다. 씨름 인기가 시들해지면서 이태현에게도 유혹의 손길이 왔다. 하지만 이종격투기는 이태현이 설 자리가 아니었다. 그 즈음 황규연은 심각한 무릎 부상에 시달렸다. 십자인대가 끊어져 선수 생명에 위기가 찾아왔다. 이태현은 이종격투기의 악몽을 털고 올해 다시 모래판으로 돌아왔다. 황규연도 2년여의 재활 끝에 모래판에 복귀했다. 그리고 멀어졌던 씨름 팬들도 다시 돌아오고 있다. 두 친구의 흥미진진한 라이벌전이 흥행의 기폭제가 됐다. 둘은 내년 2월 설날장사대회에서 건곤일척의 승부를 벼르고 있다. 그래도 서로에게 덕담을 잊지 않았다. 황규연은 “둘 다 나이가 있으니 다치지 말고 잘 훈련해서 팬들이 좋아하는 재미있는 경기를 보여주자”고 했다. 이태현도 “선의의 경쟁으로 후배들의 귀감이 되자”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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