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 #1. 1997~98 시즌 챔피언결정전 7차전. 대전 현대와 부산 기아는 3승3패로 팽팽히 맞선 채 ‘마지막 승부’를 벌였다. 라디오에선 온종일 드라마 ‘마지막 승부’의 주제가가 흘러나올 정도로 두 팀의 대결은 장안의 화제였다. 기아의 노장 허재는 1차전 29득점, 2차전 30득점으로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2승2패로 맞선 5차전에선 현대 조니 맥도웰의 팔꿈치에 맞아 오른쪽 눈썹 밑에서 피를 줄줄 흘렸다. 하지만 붕대를 감고 나와 다시 뛰는 투혼으로 팬들의 심금을 울렸다. 기아는 3승4패로 현대에 우승을 내줬다. 하지만 허재는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준우승팀에서 최우수선수가 나온 것은 지금까지도 허재가 유일하다. 허재는 지금 상대팀 현대의 후신인 케이씨씨 사령탑에 올라 있다. #2. 2003~2004 시즌 당시 원주 티지(TG)삼보(현 원주 동부)와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이던 전주 케이씨씨 신선우 감독이 ‘신산’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깜짝 트레이드를 단행했다. 트레이드 마감시한인 4라운드 마지막날 울산 모비스에 무스타파 호프를 내주고 아르 에프(R.F) 바셋을 영입한 것. 호프보다 한 수 위의 기량을 가진 바셋은 ‘최고 외국인 선수’로 주가를 올리던 찰스 민렌드와 짝을 이뤄 케이씨씨에서 환상의 호흡을 과시했다. 결국 케이씨씨는 챔프전에서 티지삼보를 4승3패로 물리치고 챔피언에 올랐다. 그런데 당시 케이씨씨는 바셋을 받는 대가로 모비스에 신인지명권을 내줬고, 모비스는 이 지명권을 통해 양동근을 영입했다. 케이씨씨는 양동근의 ‘서류상 친정’인 셈이다. 양동근은 모비스에서 뛴 세 시즌(군 입대 2년 제외) 동안 팀을 모두 챔프전에 올려놓았다. 케이씨씨 구단은 그런 양동근을 내준 게 뒤늦게 아쉽기만 하다. 농구 인생 최전성기 10년을 기아에서 보낸 허재 감독과, 자신의 의사와 무관한 트레이드로 케이씨씨 유니폼을 입지 못한 양동근은 이제 친정팀을 꺾어야 하는 운명에 놓였다. 둘은 소속팀을 챔피언에 올려놓아야 할 절박한 이유가 있다. 허 감독은 이번에 우승해야 다시 한번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고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에서 명예회복을 노릴 수 있다. 허 감독은 지난해 대표팀 사령탑에 올랐지만 아시아선수권 7위의 불명예를 뒤집어썼다. 양동근에겐 최근 네 시즌 동안 정규리그 우승을 세 차례나 차지해 놓고도 챔프전 우승은 한 번에 그친 소속팀의 징크스를 깨야 할 책임이 있다. 챔피언전 1차전은 31일 울산에서 열린다. 과연 얄궂은 운명을 가진 둘 중 누가 웃을까? 김동훈 기자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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