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바야흐로 농구 시즌이다. 12일 여자프로농구에 이어 15일 남자프로농구도 막을 올린다. 공교롭게도 12일에는 축구 한일전이, 15일에는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1차전과 겹쳐 농구인들이 울상이다. 전육 케이비엘(KBL·한국농구연맹) 총재는 “(야구와 겹치는 것은) 운명적으로 감수할 수밖에 없다”며 “여름 야구에 이어 겨울 농구가 윈윈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농구가 흥미를 끌려면 팀간 전력이 엇비슷해 매 경기 용호상박의 대결이 펼쳐져야 한다. 그런데 남녀 모두 초반부터 하위권으로 처질까봐 염려되는 팀이 있다. 대구 오리온스와 춘천 우리은행이다. 나란히 지난 시즌 최하위팀이다. 오리온스는 최근 3년 동안 10개 팀 가운데 10위→9위→10위를 했다. 우리은행도 6개 팀 가운데 5위→6위→6위에 그쳤다.
올 시즌도 뚜렷한 전력 보강이 없다. 오히려 팀의 간판선수가 빠졌거나 뛰지 못한다. 우리은행에선 지난 시즌 득점여왕 김계령이 신세계로 이적했고, 오리온스에는 국내 최고 가드 김승현이 구단과의 마찰로 벤치를 지키고 있다. 객관적인 전력상 오리온스는 전체 54경기 중 15승 이상 올리기 힘들고, 우리은행도 35경기 중 7승 이상 건지기 어렵다.
김남기 오리온스 감독과 정태균 우리은행 감독은 농구계의 ‘신사’로 통한다. 어려움이 닥쳐도 혼자 속앓이를 할 뿐 여간해선 푸념을 하지 않는다. 그런 두 감독은 요즘 흰머리가 부쩍 늘었다. 두 팀의 목표는 남들처럼 ‘우승’이 아니라 ‘돌풍’이다. 그런데 그 돌풍이 미세하게나마 감지되고 있다.
오리온스는 시범경기에서 예상을 뒤엎고 2전 전승을 거뒀다. 그것도 지난 시즌 우승팀 울산 모비스와 4위팀 창원 엘지(LG)를 상대한 것이다. 새내기 박유민, 2년차 허일영, 전체 1순위 외국 선수 글렌 맥거원 등 새 얼굴들이 돋보이는 활약을 펼쳤다.
우리은행은 올 시즌 팀을 젊은 선수들로 완전히 물갈이했다. 최고참이 30살 임영희이고, 나머지 선수들은 모조리 20대다. 30대 주부선수들이 리그를 이끌지만 우리은행은 다르다. 경험은 부족하지만 패기가 넘친다. 우리은행은 스타선수가 즐비한 국가대표와의 연습경기에서 처음엔 30점 차로 물러났지만, 손발이 척척 맞아떨어진 다음날엔 10점 차로 좁혔다. 정태균 감독은 “우리 팀이 예상대로 꼴찌라는 얘기가 안 나오도록 돌풍을 일으키고 싶다”고 했다.
오리온스는 2000~2001 시즌 꼴찌를 한 뒤 이듬해 정상에 오른 기억이 있다. 우리은행은 1958년 창단된 한국 여자농구 최초의 팀이고, 그동안 숱한 우승 경험이 있다. 투지와 끈기로 코트에 새바람을 불어넣는 꼴찌들의 반란을 보고 싶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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