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
여자농구 선수들은 투혼을 불살랐다. 일본한테만은 질 수 없다며 젖 먹던 힘까지 코트에 쏟아부었다. 정선민은 경기가 끝난 뒤 허리를 부여잡고 한발짝씩 어렵게 뗐다. 김지윤도 악수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손이 퉁퉁 부었다. 박정은은 무릎 부상으로 절뚝거리면서도 진통제를 맞고 출전을 강행했다. 임달식 감독은 일본한테 극적인 승리를 거둔 뒤 “선수들이 너무 고맙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불과 한달 전 일이다. 여자농구 국가대표 선수들이 체코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감동과 투혼으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8강을 달성했다. 국민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한국 선수들의 투혼은 중국의 높은 벽마저 넘을 기세였다. 게다가 2m2의 아시아 최장신 하은주까지 새로 가세했다. 이옥자 전 일본 샹송화장품 감독은 “중국은 파이팅이 좋은 팀 앞에선 기를 못 펴고, 일본은 하은주의 존재만으로도 두려움을 갖는다”고 했다.
여자농구 관계자들은 기대가 컸다.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은 곧 여자농구 인기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프로농구 리그가 시작되면서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프로팀 6개 구단은 상생을 포기하고 공멸을 택했다. 자기 팀 선수는 대표팀에 한명이라도 덜 빼앗기려 바둥댔다. 몇몇 구단은 소속 선수들을 대표팀에 보내지 않아 기어이 대표팀 훈련 중단 사태까지 빚었다. 어제까지 코트에서 펄펄 날던 선수가 대표 선발 문제로 논란이 일자 갑자기 코트에서 모습을 감췄다. 부상으로 대표 선발에서 제외된 선수들은 한결같이 아시아경기대회가 끝나는 12월이면 복귀가 가능하단다.
여자프로농구는 이번 시즌 팀당 35경기 가운데 대표선수가 빠진 채 5경기씩 치른다. 대표선수 차출로 다른 팀 전력이 약해져야 1승이라도 더 거둘 수 있다는 속셈이다. 이들에겐 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보다 소속팀의 1승이 더 중요한 것 같다. 한마디로 ‘소탐대실’이다. 이번 사태로 여론은 여자농구에 등을 돌리고 있다.
어느 비인기종목 선수가 두어달 전 큰 부상을 당해 대표팀에서 제외됐다. 그는 재활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다 나았다”며 대표팀 복귀를 간절히 원했다. 그가 금메달을 따도 병역혜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큰돈이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태릉선수촌에서 아시아경기대회를 준비중인 한 비인기종목 지도자는 여자농구 사태를 보면서 “아무런 대가 없이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금메달에 목숨 바치는 우리는 뭐냐”며 씁쓸해했다. 한달 전 여자농구의 투혼과 감동에 박수쳤던 손이 부끄러워진다.
cano@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