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태종
[36.5℃ 데이트] 프로농구 귀화·혼혈선수 문태종
젖먹이시절 미국으로 떠나
유럽리그에 이름 알렸지만
어머니 나라서 뛰려 한국행
동생 태영과 대결 볼거리
“국적회복 국가대표 되고파”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 같았다. 머리에 헤드셋을 끼고 몸을 흔들며 멀리서 인터뷰 장소로 걸어오는 모습이 꼭 힙합 가수를 닮았다. 올 2월 인천 전자랜드에 입단해 2010~2011 시즌 프로농구에서 최고의 화제 인물로 떠오른 귀화·혼혈선수 문태종(35). 그는 요즘 빡빡 민 헤어스타일만큼이나 뭇사람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35년 만에 처음 밟는 땅이 낯설 법도 한데 뭐가 그리 즐거운 걸까. “그냥 한국에서 운동하는 게 재밌다. 음식도 입에 잘 맞는다. 요즘엔 고깃집에서 반찬으로 주는 다슬기에 푹 빠졌다. 항상 웃어주기만 하는 동료들도 꼭 친구 같기만 하다.” 3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만난 그의 말이다. 1975년 12월1일 한국에서 태어난 그는 젖먹이 시절 한국인 어머니의 품에 안겨 아버지의 나라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스페인, 세르비아, 러시아, 그리스 등 유럽리그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농구 선수로 자랐다. 그리고 35년이 흐른 2010년. 그는 돌연 어머니의 나라 한국행을 택했다. 연봉은 4분의 1로 줄었고, 부인과 두 아이는 한국행을 망설였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나와 같은 피가 흐르는 가족들과 연결되는 곳이다. 동생이 나보다 먼저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해준 것도 도움이 됐다.” 잘 알려진 대로 문태종은 지난 시즌 득점왕에 오른 문태영(창원 엘지)의 세살 위 형이다. 둘이 펼치는 ‘문의 대결’은 벌써부터 농구판의 큰 볼거리로 자리잡았다. 둘은 지난달 31일 창원에서 프로무대 첫 맞대결을 벌였다. 이날은 올 시즌 들어 가장 많은 6764명의 농구팬이 ‘형제 대결’을 보려고 경기장을 찾았다. 첫 만남에선 형이 먼저 웃었다. “어렸을 땐 태영이랑 집에 있는 간이농구대에서 재미삼아 시합을 자주 했다. 당연히 실력은 형인 내가 나았다.(웃음) 공식 경기에서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인데, 기분이 묘했다. 경기가 끝나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더니 ‘좀 봐주지 그랬냐’고 하시더라. 어머니는 누가 이기는가는 별로 신경 안 쓴다. 그저 다치지만 않으면 좋다고 하신다.”
어머니의 존재는 그가 한국에서 운동을 하는 이유다. 김성헌 전자랜드 운영팀장은 “인천 체육관 근처에 방 3개짜리 아파트를 마련해줬는데, 방 1개를 빼서 어머니 방을 만들어 놓았더라. 항상 어머니를 먼저 챙기는 친구”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일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 문성애씨는 지난해엔 가끔 한국에 들러 문태영의 경기를 보곤 했다. 올해는 다음달 한국에 들어와 문태종의 국적회복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국적회복의 경우 귀화와 달리 국가대표로 뽑히는 데 제한이 없다. “국가대표로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머니가 더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물론 쉬운 길이 아니란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대표팀에서 뛰는 것은 모두의 꿈이다.” 1라운드가 끝난 지금 어느새 그의 이름 앞엔 ‘해결사’란 수식어가 붙었다. 승부처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그는 던질 때를 아는 슈터라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에 있을 때부터 경기 막판에 슛을 던지는 역할을 많이 맡았다. 그래서인지 언제 던져야 할지에 대한 느낌이 있다.” ‘문태종 효과’ 덕에 전자랜드는 올 시즌 1라운드를 공동 1위(7승2패)로 마쳤다.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은 “이기는 경기를 할 줄 아는 선수다. 경기 흐름상 분위기가 넘어가거나 팀에 득점이 필요할 때가 되면 꼭 먼저 나서서 해결하려는 선수”라고 말했다. 글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유럽리그에 이름 알렸지만
어머니 나라서 뛰려 한국행
동생 태영과 대결 볼거리
“국적회복 국가대표 되고파” 여행이라도 떠나는 것 같았다. 머리에 헤드셋을 끼고 몸을 흔들며 멀리서 인터뷰 장소로 걸어오는 모습이 꼭 힙합 가수를 닮았다. 올 2월 인천 전자랜드에 입단해 2010~2011 시즌 프로농구에서 최고의 화제 인물로 떠오른 귀화·혼혈선수 문태종(35). 그는 요즘 빡빡 민 헤어스타일만큼이나 뭇사람의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다. 35년 만에 처음 밟는 땅이 낯설 법도 한데 뭐가 그리 즐거운 걸까. “그냥 한국에서 운동하는 게 재밌다. 음식도 입에 잘 맞는다. 요즘엔 고깃집에서 반찬으로 주는 다슬기에 푹 빠졌다. 항상 웃어주기만 하는 동료들도 꼭 친구 같기만 하다.” 3일 인천 삼산체육관에서 만난 그의 말이다. 1975년 12월1일 한국에서 태어난 그는 젖먹이 시절 한국인 어머니의 품에 안겨 아버지의 나라 미국으로 떠났다. 그리고 스페인, 세르비아, 러시아, 그리스 등 유럽리그에서 이름깨나 날리는 농구 선수로 자랐다. 그리고 35년이 흐른 2010년. 그는 돌연 어머니의 나라 한국행을 택했다. 연봉은 4분의 1로 줄었고, 부인과 두 아이는 한국행을 망설였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올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나와 같은 피가 흐르는 가족들과 연결되는 곳이다. 동생이 나보다 먼저 한국에서 선수생활을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해준 것도 도움이 됐다.” 잘 알려진 대로 문태종은 지난 시즌 득점왕에 오른 문태영(창원 엘지)의 세살 위 형이다. 둘이 펼치는 ‘문의 대결’은 벌써부터 농구판의 큰 볼거리로 자리잡았다. 둘은 지난달 31일 창원에서 프로무대 첫 맞대결을 벌였다. 이날은 올 시즌 들어 가장 많은 6764명의 농구팬이 ‘형제 대결’을 보려고 경기장을 찾았다. 첫 만남에선 형이 먼저 웃었다. “어렸을 땐 태영이랑 집에 있는 간이농구대에서 재미삼아 시합을 자주 했다. 당연히 실력은 형인 내가 나았다.(웃음) 공식 경기에서의 만남은 이번이 처음인데, 기분이 묘했다. 경기가 끝나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더니 ‘좀 봐주지 그랬냐’고 하시더라. 어머니는 누가 이기는가는 별로 신경 안 쓴다. 그저 다치지만 않으면 좋다고 하신다.”
어머니의 존재는 그가 한국에서 운동을 하는 이유다. 김성헌 전자랜드 운영팀장은 “인천 체육관 근처에 방 3개짜리 아파트를 마련해줬는데, 방 1개를 빼서 어머니 방을 만들어 놓았더라. 항상 어머니를 먼저 챙기는 친구”라고 말했다. 미국에서 일식당을 운영하는 어머니 문성애씨는 지난해엔 가끔 한국에 들러 문태영의 경기를 보곤 했다. 올해는 다음달 한국에 들어와 문태종의 국적회복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국적회복의 경우 귀화와 달리 국가대표로 뽑히는 데 제한이 없다. “국가대표로 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어머니가 더 자랑스러워 할 것이다. 물론 쉬운 길이 아니란 것은 잘 알고 있지만 대표팀에서 뛰는 것은 모두의 꿈이다.” 1라운드가 끝난 지금 어느새 그의 이름 앞엔 ‘해결사’란 수식어가 붙었다. 승부처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그는 던질 때를 아는 슈터라는 평가를 받는다. “유럽에 있을 때부터 경기 막판에 슛을 던지는 역할을 많이 맡았다. 그래서인지 언제 던져야 할지에 대한 느낌이 있다.” ‘문태종 효과’ 덕에 전자랜드는 올 시즌 1라운드를 공동 1위(7승2패)로 마쳤다. 유도훈 전자랜드 감독은 “이기는 경기를 할 줄 아는 선수다. 경기 흐름상 분위기가 넘어가거나 팀에 득점이 필요할 때가 되면 꼭 먼저 나서서 해결하려는 선수”라고 말했다. 글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사진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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