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
둘째가라면 서러운 ‘주당’들이 모였다. 어떻게 가지고 들어왔는지 술이 한 병 두 병 모아졌다.
“선수들 얼음찜질하는 아이스박스에 넣어 가져왔는데, 우리 선수들이 ‘물도 빼앗느냐’고 역정을 냈더니 통과되더라.”
“우린 볼통(농구공이 담겨진 자루)에다가 양주를 숨겨 들여왔지.”
다섯 명의 ‘주당’들은 웃음꽃을 피웠다.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린 광저우 선수촌에 남자대표팀 유재학(모비스) 감독과 김유택(오리온스)·이훈재(상무) 코치, 여자대표팀 임달식(신한은행) 감독과 이호근(삼성생명) 코치가 모였다. 남녀대표팀 코칭스태프는 선수촌 위아래층을 썼고, 대회 초반 어느날 다섯 남자가 유재학 감독 방에 모인 것이다.
이들은 농구 인기가 하늘을 찌르던 농구대잔치 세대다. 공교롭게도 남자팀 세 코칭스태프는 당시 기아 소속이었고, 여자팀 두 사람은 현대에서 뛰었다. 두 팀의 대결은 언제나 장안의 화제였고, 만나기만 하면 으르렁댔다. 그 유명한 임달식-허재 폭행사건도 그즈음 일어났다. 동기생인 김유택 코치와 임달식 감독은 20대 청춘으로 돌아가 화기애애한 농담을 주고받았다.
어느새 화제는 ‘농구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으로 모아졌다. 4년 전 도하대회 때 남자는 5위, 여자는 4위로 추락했다. 남녀대표팀 모두 ‘명예회복’을 벼르고 있었다. 다섯 남자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농구 인기를 회복해 보자”고 다짐하고 새벽 1시쯤 자리에서 일어났다. 술이라면 밤새 마셔도 끄떡없는 이들이지만 ‘대사’를 앞두고 과음할 수는 없었다.
며칠 뒤 여자팀이 먼저 ‘전장’에 나섰다. ‘부상 병동’에다가 일부 구단의 대표팀 합류 거부로 뒤숭숭했던 터라 일본한테도 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마저 있었다. 그러나 일본을 가볍게 완파하고 결승에 오르더니 결승전에선 중국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남자팀도 승승장구했다. 최근 몇 년 동안 중동세에도 밀렸지만 이번 대회에선 중동팀들을 모조리 꺾고 결승에 올랐다. 선수들이 “소속팀 같다”고 할 정도로 오랫동안 손발을 맞춘 덕분이다. 결승에선 아시아 최강 중국의 벽을 거의 넘을 뻔했다.
두 감독은 비슷한 말을 남겼다. 임달식 감독은 “중국에서 열린 경기라 우리가 1.5배를 잘해야 이길 수 있다고 봤다”고 했고, 유재학 감독도 “대회가 중국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중국의 텃세에 막혀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박수를 받을 만한 값진 성적이다. ‘광저우의 축제’는 이제 추억이 됐고, 국내에선 남녀 프로농구가 재개됐다. 광저우의 열기가 국내 농구 코트로 옮겨질지 궁금하다. 김동훈 기자cano@hani.co.kr
두 감독은 비슷한 말을 남겼다. 임달식 감독은 “중국에서 열린 경기라 우리가 1.5배를 잘해야 이길 수 있다고 봤다”고 했고, 유재학 감독도 “대회가 중국이 아닌 다른 곳이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것이 가장 아쉽다”고 했다. 중국의 텃세에 막혀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박수를 받을 만한 값진 성적이다. ‘광저우의 축제’는 이제 추억이 됐고, 국내에선 남녀 프로농구가 재개됐다. 광저우의 열기가 국내 농구 코트로 옮겨질지 궁금하다. 김동훈 기자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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