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무 선임기자
김경무 선임기자의 스포츠오디세이 /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 취재를 마치고 지난 27일 광저우 바이윈공항에서 귀국편 비행기를 기다리다 남자농구대표팀 하승진을 봤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다음날 저녁 그가 국내 프로농구 경기에 출장하는 것을 보고는 적지 않게 놀랐습니다. 정규리그에서 1승이 절실한 소속팀에서는 그의 복귀가 천군만마를 얻은 격이겠지만, 큰 대회 격전을 치른 뒤 단 하루 휴가도 없이 곧바로 소속팀에 가서 뛰어야 하는 선수 처지가 참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더군요.
역시 광저우대회에 출전했던 배드민턴 남자복식의 이용대-정재성 짝. 그들이 귀국하자마자 김천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빅터 코리안 그랑프리 배드민턴 선수권’에 출전해 28일 우승했다는 보도자료를 접하고는 더욱 그랬습니다.
수영 3관왕 박태환은 경기 뒤 여러 날을 광저우에서 볼모처럼 잡혀 있다가 28일 귀국해 한국의 2022 월드컵 유치 활동을 돕기 위해 숨 돌릴 틈도 없이 곧바로 스위스 취리히로 떠나고, 여자핸드볼대표팀 역시 세계선수권 출격을 위해 바로 태릉선수촌에 들어간다고 하니, 눈 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운동만 해야 하는 선수들의 삶이 애처로워도 보였습니다.
아시아경기대회 취재는 이번이 세번째였는데, 이번처럼 한국 스포츠계가 안고 있는 고민과 문제점을 절실히 느껴본 적이 없습니다. 무엇보다 군 미필 선수들이 “병역, 병역”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것을 보고는 그 절박성에 공감하면서도 그들이 운동하는 궁극적 목표와 가치가 무엇인지 의문이 들었습니다. 강도인 볼링대표팀 감독이 남자 5인조 경기 중 구타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켰는데, 대한볼링협회 관계자의 설명은 더욱 가관이었습니다. “선수 중 2명이 영장을 받아놓고 이번 대회에 나왔다. 금메달을 못 따면 당장 군대에 갈 판인 상황이어서 감독이 그렇게 구타를 하며 다그친 모양이다. 이해해달라.”
홍명보 감독이 이끄는 축구대표팀의 한 선수 아버지를 민박집에서 가끔 만났는데, 그도 그러더군요. “금메달 따면 수십억원을 버는 것이다. 군대 가지 않고 병역혜택을 받으니까….” 그 아버지는 몇날을 민박집에 머물며 경기장에 나가 자식 응원을 했지만 결국 뜻을 못 이루고 허탈하게 귀국편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홍명보 감독은 아랍에미리트연합과의 4강전에서 0-1로 진 뒤 병역혜택에 ‘올인’하는 선수들의 심정을 이렇게 전했습니다. “선수들과 미팅을 했는데, 병역문제에 관한 눈물의 미팅이 돼 버렸다. 선수들이 그렇게 병역 때문에 고민하는 줄 몰랐다.” 병역과 구타….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가 끝났는데도 여전히 머릿속에 맴도는 단어들입니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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