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기훈(21·서울 SK)
모비스전 15득점 맹활약
“신인왕 타면 부모님 여행”
“신인왕 타면 부모님 여행”
부모님은 마지막이라며 문구점을 차렸다. 하지만 다시 빚만 진 채 문을 닫았다. 네 가족은 또 이사를 했다. 그가 초등학교 4학년 때다. 그런데 그곳에서 변기훈(21·서울 SK·사진)의 인생이 바뀌었다. 새로 전학 간 부산 성동초등학교에 농구부가 있었고, 큰 키에 운동신경이 좋은 그는 농구에 빠져들었다.
가난은 그에게 독기를 품게 했다. 농구부 회비는커녕 급식비도 내지 못했고, 잘 먹지 못한 탓에 기운도 없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농구에 더 집착했다. 그는 사람 복이 있었다. 부산 동아고 이상국 코치와 건국대 황준삼 감독이 그들이다. 이 코치는 그가 농구에 눈을 뜨게 만든 장본인이다. 변기훈의 주무기인 정확한 슛과 드라이브인을 가르쳐준 스승이다. 황 감독은 그의 기를 살려줬다. 그가 고교 때부터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았고, 대학 입학 뒤에는 봉사장학금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줬다. 특히 팀 전력의 손실을 감수하면서 집안 사정 때문에 빨리 프로에 가고 싶었던 그를 대학 3학년 때 놓아줬다.
변기훈은 지난해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4순위로 서울 에스케이에 지명됐다. 그리고 1일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울산 모비스전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1쿼터에만 3점슛 3개를 포함해 11점을 몰아넣는 등 15득점으로 활약했다. 경기 초반 고전하던 에스케이가 2쿼터 이후 줄곧 10점 안팎의 리드를 지켜 연패를 끊을 수 있었던 것은 변기훈의 초반 활약 덕이 컸다. 고교 선배인 주희정(33)은 그가 마냥 대견스러운 듯 “기훈이는 농구 능력을 타고난 탤런트 기질이 있다. 아직 신인이라 위축돼 장점을 활용하지 못할 뿐”이라고 치켜세웠다.
변기훈은 경기에 나서 첫 슈팅이 들어가지 않으면 그날 던지는 슛 대부분이 림을 외면하는 징크스가 있다. 주희정은 “원래 내성적인 성격인데다 고참들 앞에서 늘 주눅이 들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선 달랐다. 변기훈은 “오늘 첫 슈팅이 불발됐지만 개의치 않고 열심히 뛰었다. 더 적극적으로 하려 했다”며 “징크스 따윈 이제 없다”고 했다.
신인왕에 대해선 마음을 비웠다면서도 신인왕 0순위로 거론되는 이정현(23·안양 인삼공사)을 유난히 의식했다. 그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상하게 정현이 형한테는 이기고 싶다”고 했다. 가난을 극복하고 프로 선수로 첫발을 내디딘 그는 “올 시즌 뒤 신인왕 상금 타서 부모님 비행기 태워드리고 싶다”는 소박한 꿈을 펼쳐 보였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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