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허무한 역전패를 당한 뒤 관중들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아내는 텅 빈 체육관 주차장에서 엉엉 울고 있었다. 지인들이 위로하고 다독였지만 안타까운 눈물은 계속 흘러내렸다. 그 시각 유도훈 인천 전자랜드 감독은 피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전자랜드는 지난해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13연패와 12연패를 당하며 15승39패, 10개 팀 중 9위에 머물렀다. 9연패 중일 때는 3쿼터까지 12점이나 앞서다가 4쿼터에서 선수들이 무엇에 홀린 듯 2득점에 그치며 역전패를 당했다. ‘만만한’ 하위팀한테마저 덜미를 잡히며 끝이 보이지 않던 연패는 ‘13’까지 이어진 뒤 가까스로 멈췄다. 종료 2초를 남기고 2점을 앞서던 경기에선 신인 선수의 수비 실수로 버저비터 3점슛을 얻어맞고 허무하게 지기도 했다.
불면의 밤이 며칠째인지 헤아릴 수 없었다. 터진 입술만큼이나 속은 더 터지고 멍들었다. 자존심도 갈가리 찢겨졌다.
내리막 다음에는 오르막길이 있다고 했던가. 유 감독은 비시즌 동안 말없이 내실을 다졌다. 높이와 노련미를 보강하고 수비가 좋은 선수들을 끌어모았다. 전자랜드는 이번 시즌 17승6패로 단독 선두를 달리고 있다. 3점 차 이내 승부에서 6승1패다. 유 감독의 승부사 기질이 돋보인다.
작은 체구지만 승부처에선 체육관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큰 목소리로 선수들을 다그친다. 마침내 단독 선두를 되찾은 26일, 유 감독은 “무엇보다 자존심을 회복해 기쁘다”고 했다.
선수들을 생각하는 마음도 애틋하다. 크리스마스 때는 산타클로스로 변신해 몸 풀 때 긴장을 풀어주고 집중력을 높여주는 고급 헤드폰을 선수들한테 선물했다. 그는 “단독 선두는 선수들이 만든 것”이라며 “기회를 많이 주지 못한 선수들한테 미안하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유 감독은 늘 인천 숙소에서 선수들과 함께 지낸다. 이번 시즌엔 지난 시즌 기록한 15승을 달성하고서야 서울 문정동 집에 다녀왔다. 이번에 잡은 목표는 ‘20승’. 현재 17승이니 앞으로 3승을 더 해야 집에 갈 수 있다.
그는 현역 시절 재치있는 플레이로 많은 팬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작은 키(173㎝) 때문에 실업 선발에는 뽑혔어도 국가대표는 한 번도 지내지 못했다. 그래서 “태릉 밥 한번 먹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닌다. 이번 시즌 우승팀 감독은 내년 아시아선수권대회 국가대표 지휘봉을 잡게 된다. ‘작은 거인’ 유 감독의 소원이 이뤄질 수 있을까.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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