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호(39·사진 왼쪽)-홍선희(34·오른쪽) 부부 심판
이준호·홍선희 부부 심판
“함께 경기 땐 신경 쓰여”
지난 24일 공식경기 ‘함께’
“탈없이 시즌 마무리” 목표
“함께 경기 땐 신경 쓰여”
지난 24일 공식경기 ‘함께’
“탈없이 시즌 마무리” 목표
지난해 12월24일, 크리스마스이브를 맞아 김대영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심판위원장이 깜짝 이벤트를 펼쳤다. 이날 춘천 호반체육관에서 열린 여자프로농구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경기에 이준호(39·사진 왼쪽)-홍선희(34·오른쪽) 부부 심판을 배정한 것. 국내 프로스포츠에서 부부 심판이 탄생한 것도 이례적이지만, 부부가 함께 공식경기에 심판으로 나선 것도 드문 일이다.
■ 사랑 이날 경기를 무사히 마친 부부의 반응은 엇갈렸다. 남편은 “아내한테는 얘기 안 했지만 솔직히 신경이 쓰였다”고 했다. 그런 아내도 눈치를 챈 모양이다. “저는 편했는데 오빠는 부담스러웠던 모양”이라고 했다.
이 심판은 여자프로농구 원년(1998년)부터 심판을 맡은 베테랑이다. 현재 13명의 심판 가운데 원년 멤버는 3명밖에 없다. 홍 심판은 아마농구에서 심판을 보다가 2008년부터 여자프로농구로 옮겼다.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사랑이 싹텄다. 이 심판은 그 전부터 류상호·문석진 심판 등과 어울리며 스스럼없이 지냈던 홍 심판이 여자프로농구로 옮겨오자 잘 대해줬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심판이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는 사람이 있다”고 말했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온 홍 심판한테 “그게 바로 너”라는 문자를 보냈다. 홍 심판은 “그때 그게 내가 아니었다고 했다면 몹시 서운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둘은 2009년 9월 결혼에 골인했다.
■ 시련 부부에게 지난해는 악몽이었다. 1월24일 금호생명은 우리은행을 1점 차로 물리쳤다. 그런데 우리은행은 마지막 공격에서 홍 심판이 파울을 선언하지 않아 졌다고 따졌다. 이날로 13연패를 당한 우리은행 선수들은 엉엉 울었다. 홍 심판은 “나중에야 항의가 거센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했다.
이 심판은 훨씬 더 큰 시련을 겪었다. 3월24일 열린 4강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종료 직전 결정적인 오심으로 무기한 출장정지 징계를 받은 것. 당시 인터넷에선 파울 장면을 코앞에서 놓친 이 심판의 사진이 누리꾼들의 비난 댓글과 함께 떠돌았다. 이 심판은 “솔직히 결혼 전이었다면 심판을 그만두려고 했다”며 마음고생을 털어놨다. 그래도 아내의 힘이 컸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홍 심판은 “잘될 거야. 힘내!”라며 남편을 위로했다. 부부는 심판이 정말 어려운 직업이라고 털어놨다. 홍 심판은 “아마에 비해 프로는 정말 힘들다. 항의는 이해하지만 경기 외적으로 오해받을 때는 정말 힘들다”고 했다.
■ 희망 이 심판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잠깐 농구를 했다. 대학에서 체육학을 전공한 뒤 1급 심판 자격증을 땄다. 그는 “대학 다닐 때 농구대잔치를 보려고 서울에 올 정도로 농구를 좋아했다”고 말했다. 홍 심판은 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를 시작해 수원대에서 은퇴했다. 인천 명신여고 출신으로 조은주(KDB생명), 김단비(신한은행) 등이 후배다. 또 모교인 인천 산곡북초등학교 농구부 코치를 맡아 소년체전 준우승으로 이끌기도 했다. 당시 제자 가운데 2명이 지난해 신인으로 프로에 입문했다.
부부는 ‘공부하는 심판’으로 유명하다. 이 심판은 3년 전 계명대 체육교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땄고, 홍 심판도 인하대 체육교육과에 편입했다. 또 나란히 국제심판 자격증도 보유하고 있다. 햇수로 결혼 3년차이지만 2세 계획은 아직 마음뿐이다. 심판도 매일 체력훈련을 하고 한 경기에 보통 7~8㎞를 뛰기 때문이다. 부부의 새해 소망은 올해도 똑같다. “별 탈 없이 시즌을 잘 마무리하는 것. 그뿐이에요.”
글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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