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바니공주’ 변연하(31)는 초조했다. 텔레비전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앉았다 일어났다를 몇번이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그는 “차라리 코트에서 뛸 때가 마음 편했다”고 했다.
그날도 국민은행은 패색이 짙었다. 4쿼터 종료 6분 전 9점이나 뒤졌다. 지면 8연패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종료 22초 전 기어이 결승골을 넣고 역전승을 거뒀다. 변연하는 너무 좋아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었다. 누구한테 먼저 축하문자를 보낼까 잠시 망설였다. 그때 강아정을 시작으로 김수연, 정선화 등 후배들의 문자가 답지했다. 그날은 마침 후배 이경희의 생일이었다. 변연하는 “선수가 생일이면 그 팀은 꼭 이기더라. 그래서 이길 것 같았다”고 했다. 그날 밤 그는 부산 집에 내려온 뒤 처음으로 이경희의 생일 축하 자리에 모인 동료들과 영상통화를 했다.
같은 시각 1963년생 토끼띠 정덕화 감독은 담담해했다. “(연패 탈출이) 참 힘들다”며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연패에 빠진 동안 입술은 터지고, 눈은 충혈됐다. 머리는 어느새 하얗게 변해갔다. 천안시 안서동 국민은행 숙소 정 감독의 방에는 날마다 맥주 한 병과 소주 한 병이 놓여 있다. 그는 “그걸 섞어서 다 마시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다”고 했다.
사실 정 감독은 올 시즌 기대가 컸다. 현역 시절 ‘수비의 달인’답게 수비 조직력을 탄탄하게 구축했다. 출발도 2연승으로 상큼했다. 그런데 2라운드에서 국가대표팀에 3명이나 내줬다. 다른 팀들이 소속 선수의 대표팀 차출에 항의할 때 정 감독은 군말 한 마디 안 했다. 하지만 조직력에는 서서히 균열이 생겼다. 국가대표 3인방이 복귀했지만 이번엔 전력의 핵심 변연하가 쓰러졌다.
변연하는 지난해 12월12일 경기 도중 오른팔꿈치 인대가 끊어졌다. 너무나 고통스러웠다. 전치 6주의 중상이었다. 그는 9월 체코세계선수권대회와 11월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팀 에이스로 활약했다. 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며 너무 무리한 탓이었을까. 어쨌든 그의 공백은 치명타였다. 그가 빠진 뒤 연패에 허덕이던 어느날 선수들은 양쪽 어깨에 스티커를 새기고 코트에 나섰다. 왼쪽에는 ‘위드 캡틴(WITH CAPTAIN) 10’, 오른쪽에는 ‘세이버스’(SAVERS)라는 문구였다. 10번은 주장 변연하의 등번호이고, 세이버스는 국민은행의 닉네임이다.
정 감독과 변연하는 공교롭게도 삼성생명에서 국민은행으로 비슷한 시기에 팀을 옮기며 7년째 한솥밥을 먹고 있다. 말수가 적은 정 감독도 사석에선 “연하는 참 좋은 선수”라고 칭찬한다. 변연하도 “감독님 배려 덕분에 대학 공부도 마치고 새해부터 집에서 치료와 재활도 할 수 있다”며 고마워한다. 토끼띠 감독과 ‘바니공주’ 사이엔 믿음과 신뢰가 흐른다. 선수들도 주장을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다. 국민은행의 신묘년 토끼해가 밝은 이유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한겨레 인기기사>
■ 최중경 아내, 사고로 아빠잃은 아이들 땅까지 사들여
■ YTN에도 ‘블랙리스트’ 있나…박원순 방송불가
■ 오세훈, 무상급식 주민투표 철회
■ 정보가 너무 많아서…무인항공기 ‘오폭’
■ 풀무원 도전장 ‘라면 쟁탈전’ 시작되나
■ “바이어는 등돌리고…적자만 쌓인다”
■ 한명숙 재판 “0.1초 먼저 일어났다” 입씨름
■ YTN에도 ‘블랙리스트’ 있나…박원순 방송불가
■ 오세훈, 무상급식 주민투표 철회
■ 정보가 너무 많아서…무인항공기 ‘오폭’
■ 풀무원 도전장 ‘라면 쟁탈전’ 시작되나
■ “바이어는 등돌리고…적자만 쌓인다”
■ 한명숙 재판 “0.1초 먼저 일어났다” 입씨름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