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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다 포기한 순간, 그의 이름이 불렸다

등록 2011-02-01 19:18수정 2011-02-01 19:39

대학농구 3점슛왕 상명대 임상욱
대학농구 3점슛왕 상명대 임상욱
어머니는 새벽녘 잠에서 깼다. 시계를 보니 5시였다. 방금 전 꾸었던 꿈이 생생했다.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 사이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새들이 날아올랐다. 거기에 ‘3등’이라는 글자가 보였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꿈 얘기를 하지 않았다. 입방정을 떨다가 큰일을 그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저 “좋은 꿈 꿨다”고만 전했다.

31일 프로농구 신인 드래프트에 나선 임상욱(27·상명대)은 어머니 송영화(56)씨와 함께 설레는 마음을 추스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날은 마침 임상욱의 외할아버지 제삿날이었다. 어머니는 경기도 고양시 화정 집에서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으로 가는 길에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아버지! 손자 녀석 농구 하나 바라보며 13년 동안 고생 많이 했습니다. 오늘 결실을 맺게 해주세요.’

임상욱은 대학을 세 곳이나 전전했고, 현역으로 군대까지 다녀온 늦깎이 신인이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한때 농구를 그만뒀다가 뒤늦게 상명대에서 다시 농구공을 잡았고, 지난해 대학리그 3점슛왕에 등극했다. 그러나 오세근, 김선형, 최진수 등 특급 신인이 즐비한 상황에서 그를 눈여겨본 팀이 있을지 궁금했다. 게다가 지난해 1부리그로 승격한 상명대는 그동안 단 한 명도 프로 선수를 배출하지 못했다.

1라운드 1순위부터 차례대로 선수 이름이 불려졌다. 호명된 선수들은 유니폼 상의를 입고 포즈를 취했다. 카메라 플래시가 요란하게 터졌다. 2라운드 10순위까지도 그의 이름은 불려지지 않았다. 이제 3라운드. 그러나 3라운드에서는 각 팀들의 지명권 포기가 속출했다. 진행자가 말했다. “9순위 케이씨씨(KCC)도 패스입니다.” 임상욱은 마음을 비웠다. 이제 남은 팀은 마지막 울산 모비스였다. 그런데 드라마처럼 극적인 일이 일어났다. 유재학 감독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상명대학교 임상욱”이었다. 순간 환호와 박수가 터졌다. 1순위 오세근이 지명됐을 때와는 또다른 분위기였다. 임상욱은 “단상까지 가는 길이 너무나 멀게 느껴졌다”고 했다.

모비스 유니폼 상의를 입고 모자를 쓴 임상욱은 객석 중간쯤 앉은 한상호 상명대 감독에게 다가가 큰절을 올렸다. 그는 이어 객석 맨 뒤에 서 있던 어머니를 찾았다. 그러더니 역시 큰절을 올렸다. 어머니는 그런 아들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한상호 감독은 “모비스에서 유재학 감독님의 지도를 받으면 좋은 선수로 성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재학 모비스 감독은 “사연 때문에 뽑은 것은 아니다. 슛이 좋고 빠른 선수이니 한번 키워보고 싶었다”고 했다.

이날 드래프트장에는 따로 떨어져 사는 그의 형(31)도 함께했다. 명절 때도 잘 만나지 못하는 형이지만 고향 부산의 한 요양원에 입원중인 아버지를 빼고 오랜만에 온 식구가 다 모였다. 임상욱의 얼굴에 눈물자국 대신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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