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기자의 슬램덩크]
거의 날마다 술자리였다. 하루에 한 선수씩 불러내 저녁마다 ‘취중 면담’을 했다. 꼬박 한 달이 걸렸다. 2008년 4월 명지대 감독에서 프로농구 창원 엘지(LG) 사령탑으로 자리를 옮긴 강을준 감독은 소통의 매개로 ‘술’을 선택했다. 그런데 선수 대부분은 강 감독과의 ‘취중 면담’에서 제 잘못은 탓하지 않고 모두 남 탓만 했다. 그는 “그때 단체 미팅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강 감독은 알몸으로 뜨거운 물에 들어가 대화를 나누는 ‘목욕탕 미팅’을 시작했다. 벌써 3년째다. 목욕탕에선 감독과 선수가 아니라 형님과 동생이다. 목욕탕 미팅은 팀이 위기에 놓일 때마다 효과를 냈다. 엘지는 이번 시즌 초반 4연패 수렁에 빠졌다. 간신히 연패에서 벗어났지만 이번엔 안방 팬들 앞에서 부산 케이티(KT)에 경기 내내 앞서다가 제스퍼 존슨에게 종료 버저비터 3점슛을 얻어맞고 1점 차로 졌다. 충격이 컸다. 승부처에서 결정적인 실책이 많았던 탓에 선수들의 자책감도 컸다. 강 감독은 그날 밤 선수들을 목욕탕으로 불렀다. 그는 “모두 내 잘못이다. 작전도 내가 짰고. 선수 기용도 내가 했다. 너희들은 아주 잘한 경기였다”며 선수들을 격려했다. 사실 강 감독은 그날 밤 자꾸만 아쉬웠던 장면이 떠올라 뜬눈으로 밤을 지새웠다.
강 감독은 6강 진출의 기로에 섰던 지난달 27일 케이씨씨(KCC)와의 전주 원정경기에서 심판의 석연찮은 판정에 항의하다 퇴장을 당했다. 경기는 졌고, 선수들은 풀이 죽어 있었다. 강 감독은 다음날에도 선수들이 자신의 눈치만 살피자 곧바로 목욕탕에 모이도록 했다. 그러더니 선수들에게 물을 뿌리고 장난을 쳤다. 그리고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에 나오는 유오성의 대사를 외쳤다. “그만해라. 마이 무긋다~.” 그 뜻을 잘 아는 선수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이번 시즌 엘지는 유난히 판정 ‘운’이 없었다. 1월25일 울산 모비스전에선 송창용의 종료 버저비터 2점슛이 3점슛으로 인정되는 오심 탓에 1점 차로 졌다. “그만해라…”는 심판을 향한 풍자 섞인 유머였다. 팀 분위기는 순간 확 바뀌었다.
‘목욕탕 미팅’에는 외국인 선수도 예외가 없다. 지난 시즌까지 남 앞에 알몸을 보이는 것에 질색하던 크리스 알렉산더도 이제는 통역이 귀찮아할 정도로 사우나 맛을 들였다. 그는 경기를 그르친 뒤 강 감독에게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내기도 한다.
강 감독의 ‘목욕탕 미팅’은 3년 연속 6강 플레이오프 진출로 결실을 맺었다. 코트에서 남 탓을 하던 선수들의 손가락질이 ‘내 탓이오’ 하면서 제 가슴을 치는 손바닥으로 바뀌었다. 전력 보강은커녕 포인트가드 이현민을 상무에 보낸 이번 시즌에는 중반까지 6강 진출이 절망적이었다. 하지만 4라운드 이후 무서운 상승세로 플레이오프 진출을 확정지었고, 공동 5위까지 올라섰다. ‘강을준표 목욕탕 리더십’의 위력이다.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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