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무 선임기자의 스포츠오디세이]
2010 남아공월드컵을 눈앞에 두고 그해 5월 축구대표팀이 일본 사이타마로 일본대표팀과 친선경기를 하러 갈 때였습니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탑승에 앞서 허정무 감독과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이근호의 컨디션은 어떠냐?”고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아주 좋죠. 좋습니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당시 남아공월드컵 최종엔트리 확정을 앞두고 포워드 진용에 주전경쟁이 매우 치열한 상황에서 이근호에 대한 신임 여부를 떠보기 위한 질문이었습니다. 주전을 굳힌 박주영을 빼면, 34살 노장 안정환과 30살 이동국, 21살 신예 이승렬 등 4명이 포워드 자리를 놓고 경합해 이들 중 한 명은 탈락해야 하는 운명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오스트리아 전지훈련 뒤 허 감독이 6월1일 발표한 최종엔트리 23명 명단에는 이근호만 빠졌습니다. 그때 전혀 뜻밖이라는 반응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근호는 아시아 최종예선 통과의 일등공신 아닌가. 그런데 돌연 ‘팽’시키다니. 노장들 공연히 뽑아놓고 다시 내보낼 수 없으니 이근호를 희생양 삼은 것은 아닌가.’ 허 감독 등 코칭스태프 판단은 존중했지만, 납득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 이근호가 다시 조광래 감독의 부름을 받고 축구대표팀에 귀환했습니다. 22일 파주 대표팀 훈련에 합류한 이근호는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긴장되지만 기분은 좋다. 잘하는 후배들이 많이 뽑혀 걱정된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조 감독은 발탁 배경에 대해 “동계훈련을 잘 소화했고 최근 6개월 동안 활약도 나쁘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근호는 지난해 8월11일 나이지리아와의 친선경기를 앞두고 조광래호에 처음 뽑혔으나 당시 교체멤버로도 출전하지 못하는 ‘굴욕’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일본 J리그 감바 오사카 소속으로 1일 2011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E조 1차전에서 멜버른 빅토리(호주)를 상대로 1골 1도움을 기록하고, 5일 세레소 오사카와의 J리그 개막전에서는 결승골을 돕는 등 활약을 펼치며 재기의 신호탄을 쏴올렸습니다. 15일 톈진 테다(중국)와의 챔피언스리그 원정경기에서는 전반 31분 1-1 동점골을 기록하는 활약까지 펼쳤습니다. 조광래 감독의 선택이 적절했음을 입증한 것입니다.
이제 26살에 접어든 이근호는 다시 태극마크를 달게 됐지만 경쟁자들이 즐비해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K리그 개막과 함께 기대주로 떠오른 1m91의 박기동(23·광주FC)을 비롯해 2011 아시안컵에서 가능성을 보인 지동원(20·전남 드래곤즈), 김신욱(23·울산 현대), 그리고 수비형 미드필더에서 공격수로 변신한 김정우(29·상주 상무)까지. 이근호는 과연 이 치열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25일 온두라스와의 A매치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입니다.
kkm10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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