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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 한명씩 제치는 쾌감 아찔”

등록 2011-03-24 20:13

정진혁
정진혁
[36.5℃ 데이트] 서울국제마라톤 준우승 정진혁

“2위로 골인했을 때 기분요? 그냥 ‘결승선이구나…’ 했죠. 사람들이 몰려와 사진을 찍는데 ‘왜 이러지?’ 하고서야 제가 2시간9분대를 기록한 걸 알았습니다.”

한국 마라톤의 ‘샛별’ 정진혁(21·건국대)은 20일 서울에서 열린 2011 서울국제마라톤대회 준우승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잘 믿기지 않는다. 마라톤에 도전한 지 겨우 1년 만에 개인 최고기록이자 대학부 신기록(2시간9분28초)로 이 대회 은메달을 따내며 단숨에 차세대 유망주 간판을 꿰찼다. 1위인 굼리(모로코·2시간9분11초)와 17초 차였다. 이 대회는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공인한 ‘골드라벨’급 레이스다. 8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라는 큰 행사를 앞두고 있는 한국 육상계는 이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박수로 반겼다. 24일 건국대에서 체육교육학 수업을 마치고 나오는 그를 만났다.

“마라톤 풀코스 출전은 세번째여서 우승을 노리진 않았고, 9분대 기록 단축이 목표였습니다. 목표대로 기록을 단축하는 데 성공했는데, 운때가 맞아 준우승까지 한 것 같아요.” 시종일관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는 투는 21살답지 않게 어른스러웠다. 다만 “인터뷰는 처음이었는데, 좋아하는 연예인을 묻길래 박보영이라고 했더니 ‘런던올림픽 출전하고 박보영 만나겠다’고 기사가 나가서 민망했다”며 얼굴이 붉어질 때만은 감출 수 없는 풋풋한 대학생 티가 났다.

정진혁 프로필
정진혁 프로필
■ ‘90년생’ 강철 체력 1990년생인 그는 미래가 밝다. 171㎝에 58㎏, 체지방 7%대의 단단한 ‘마라톤 맞춤 체형’이다. 첫 출전이던 지난해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15분1초 기록으로 데뷔했고, 11월에는 2시간10분59초로 껑충 뛰어오른 데 이어 이번에 9분대를 기록하며 빠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육상 단거리와 중거리 출신으로 스피드는 물론, 마라톤에 적합한 강철 체력까지 갖췄다. 한국 마라톤의 간판 지영준(30·코오롱)이 감기 몸살로 출전을 포기하고, 역시 기대주로 꼽혔던 김민(22·건국대)조차 컨디션 저조에 20일 대회 날 황사에 꽃샘추위, 비까지 내려 레이스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정진혁은 꿋꿋하게 달렸다. “너무 추웠다. 안경을 쓰지 않았는데 비가 오는 바람에 시야가 더 흐렸고, 35㎞ 지점에서 준비된 스페셜 드링크도 집지 못하고 달렸다”는 그는 결국 가벼운 감기에 걸렸다. 듣고 보니 살짝 코맹맹이 소리로, “특히 케냐 선수들이 많이 힘들어했다고 들었다. 병원에 실려간 선수도 있다고 했다”며 “지난겨울 제주도 전지훈련을 갔는데, 유난했던 한파 때문에 눈 맞고 뛰었던 경험이 도움이 됐다”고 덧붙인다.

■ 그를 만든 것은 8할이 끈기 그는 “타고난 신체조건과 체력을 갖춘 선수들도 있겠지만, 전 100% 만들어진 몸”이라고 말한다. 원래 고교 때까지 1500m와 5000m 중거리 선수였던 그를 눈여겨본 건국대 쪽에 의해 마라톤을 중점적으로 하는 육상부에 스카우트되면서 ‘몸 바꾸기’가 시작됐다. “운동장 한 바퀴를 함께 돌아도 처음에 스퍼트를 내고 유지하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천천히 달리다가 속도를 내는 선수도 있듯이 각자만의 훈련 스타일이 있는데, 그걸 마라톤 스타일로 맞추는 것이 어려웠다.” 충남 예산 출신의 그가 고교 때까지 지역 에이스로서 맞춤 지도를 받았다면, 대학에선 단체훈련에 익숙해져야 했던 것도 어려움이었다. 1학년 내내 지독한 슬럼프를 겪었다. 연습삼아 뛰는 5000m는 최고 14분15초, 보통 20~30초대를 기록해 왔지만 그 때는 15분대까지 처졌다. “원래 중거리 선수들이 마라톤 적응에 어려움을 겪지만, ‘역시 너도 별 수 없구나’ 하는 듯한 시선이 상처였다.” 정진혁은 누구보다 일찍, 그리고 오래 훈련하며 끈기로 버텼다. 그렇게 1학년 말이 되자 서서히 기록이 좋아졌다. “근육 생성에 방해가 된다”는 말에 좋아하던 초콜릿과 아이스크림, 탄산음료도 끊으며 몸을 만들었다.

■ “달리기가 가장 짜릿” 무엇보다 그는 운동을 진정으로 즐긴다. “고교 시절, 단·중거리 공통이라서 가장 많은 육상선수들이 참가하는 1500m 종목에서 한 명씩 선수들을 제쳐나가는 쾌감이 세상 최고로 아찔했다. 달리기 선수들 누구나 한번 꿈꾸는 마라톤에 도전할 기회가 왔을 때 놓칠 이유가 없었다”는 그다. 그를 지난겨울 내내 지도했던 유영훈 코치는 “시키지 않아도 찾아서 훈련을 할 만큼 운동을 즐기는 선수”라며 “마라톤의 훈련량이 엄청난데, 겨울 3개월 훈련 동안 감기 근육통 한 번 앓지 않을 정도로 잔부상 없는 체력과 빠른 적응력이 강점”이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정진혁의 다음 목표는 8월 대구세계육상선수권대회에서 2시간8분대를 기록하는 것이다. 현재 마라톤 간판스타인 지영준의 최고기록이 2시간8분30초(2009년 대구국제마라톤대회). “일단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기록 단축이 1차 목표다. 아직은 내 능력이 부족해 말할 수 없지만, 추세를 봐서 가능하다면 한국 마라톤 기록(2시간7분20초)도 꼭 깨보고 싶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훈련량만 봐도 벅찬데, 한국 기록을 깨려면 연애할 틈도 없겠다”고 하자 “입학한 뒤로 미팅 단 한 번도 못했다”고 얼굴을 붉힌다. 글 정유경 기자 edge@hani.co.kr

사진 김봉규 기자 bong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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