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재현 선수
KCC 우승 이끈 고참 가드
고비 때마다 3점슛 ‘펑펑’
고비 때마다 3점슛 ‘펑펑’
[별별 스타] 임재현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홍길동이 따로 없다. 주전 전태풍이 헤맬 때 ‘종결자’ 구실로 위기 때마다 허재 감독을 구해냈다. 전신 현대를 포함해 통산 5번째 챔피언에 오른 프로농구 케이씨씨(KCC)의 숨은 주역 임재현(34). 코트에선 질풍노도지만 28일 경기도 용인 집에선 ‘착한 아빠’로 돌아왔다. 출근한 아내 대신 아들 서후(3살)를 유치원에 데려다 주고 집안 청소도 했다. 시원한 웃음을 잃지 않는 프로 10년차의 임재현은 좌절을 모르는 낙관파의 대명사다.
■ 겸손은 나의 무기 챔프전의 임재현은 숨은 최우수선수였다. 첫 경기 패배로 덜미를 잡힌 뒤 맞은 2차전. 눈빛에 레이저빔을 단 그는 3점슛 2개를 포함해 15점을 올리며 승리를 이끌었다. 우승 확정 6차전 때는 10점, 4튄공잡기, 4도움주기로 가장 큰 공을 세웠다. 포인트가드지만 전태풍과 달리 공격 욕심을 내지 않는다. 속도의 강약을 조절하며 맥을 탁탁 끊어 들어갈 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추승균 다음의 최고령 선수지만 허재 감독은 ‘들개’라고 부른다. 종횡무진 누비면서 몸을 사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임재현은 “우리 팀은 워낙 좋은 선수들이 많다. 나는 분위기를 반전시키고 궂은일을 해야 그나마 존재감이 생긴다”고 했다. 정말 그럴까. 챔프전 평균 31분2초 출전에 8.3득점, 3.3튄공잡기, 성공률 41.2%의 3점포 한방은 어떤가. 스스로 낮추지만 스타성마저 숨길 수는 없다.
■ 아내는 나의 힘 배재고와 중앙대의 특급 포인트가드는 2000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전체 2위로 청주 에스케이(SK)에 입단했다. 이듬해 새내기로 챔피언전까지 갔지만, 챔프전에서 대구 동양에 3승4패로 아쉽게 졌다. 이후에는 플레이오프에 범접하지 못했다. 그러다 찾아온 기회가 2007년 케이씨씨 이적. 하지만 웬일인지 에스케이 시절 10.4점이던 평균 득점은 6.3점으로 반토막이 났다. ‘임봉사’라는 비아냥이 들렸다. 시야가 생명인 포인트가드에게는 굴욕적인 별명. “그땐 정말 운동하기도 싫고, 너무 우울했어요.” 그를 일으켜준 이가 아내 김보라(31)씨다. 힘없이 집에 돌아온 남편에게 “긍정적인 마인드를 가지라”고 조언했다. 농구 얘기는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한다. 임재현은 챔피언전 우승 뒤 “아내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 부활한 34살의 노장 농구 전문가들은 임재현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고 한다. 2008~2009 시즌 생애 첫 챔피언 반지를 끼었고, ‘임봉사’ 대신 ‘임내시’라는 별칭도 생겼다. 미국프로농구의 스티브 내시에 빗댄 것이다. 베테랑답게 큰 경기에 강하면서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와 번개 속도는 최강의 무기. 부상병동 케이씨씨에서 유일하게 부상 없이 시즌을 마치기도 했다. 그는 “몸을 사릴 때와 던질 때를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을 비결로 설명했다. 욕심을 버린 것도 지혜다. “저도 공격 성향이 강해요. 하지만 우리 팀에서 저까지 공격하면 되겠어요? 팀이 먼접니다.” 특급은 뭔가 다르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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