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야구협회 심판위원인 김형주씨가 28일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야탑고와 장충고의 16강전이 열린 서울 목동구장에 섰다
국제야구심판 겸 하나로클럽 부점장 김형주씨
“아웃!”, “세이프!”
28일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야탑고와 장충고의 16강전이 열린 서울 목동구장. 때이른 불볕 더위도 움찔할 만큼 1루심으로 나선 김형주(45·사진)씨의 판정이 추상같다. 그는 경기 뒤 “오늘처럼 더운 날에는 심판도 집중력을 잃기 쉬운데 무사히 경기를 마쳤다”며 웃음지었다.
김씨는 사실 ‘투잡족’이다. ‘주경야심’이라고 해야 할까. 평일 낮에는 농협 하나로클럽의 서울 서대문점 부점장으로 일하고, 밤이나 주말에는 심판복으로 갈아 입고 야구 심판으로 변신한다.
그는 한때 잘나가는 야구선수였다. 인천 제물포고와 단국대에서 투수로 활약한 그는 1989년 인천 연고팀인 프로야구 태평양 돌핀스에 신인 1차 지명을 받았다. 당시로선 거액이던 계약금 2200만원을 제의받았지만 고심 끝에 “눈앞의 돈보다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직업을 위해” 실업팀 농협에 입단했다. 93년 은퇴한 뒤 곧바로 농협 직원으로 근무하던 그는 아마야구 심판 자격증을 따, 95년부터 심판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현재 27명의 대한야구협회 소속 심판위원 가운데 두 가지 직업을 가진 이는 그가 유일하다.
그는 ‘주경야심’ 하면서도 지금까지 16년 동안 초·중·고·대학 등 전국 규모의 대회에서 1500경기의 ‘포청천’으로 나섰다. 그동안 우수심판으로도 10여차례나 선정됐다.
그는 이따금 국제심판으로도 활약한다. 2003년 16살 이하 청소년야구대회와 2006년 대만에서 열린 대륙간컵 국제야구대회, 2008년 체코 세계대학야구선수권대회 등 국제대회에도 세번이나 파견나갔다. 그는 잊을 수 없는 경기로 2006년 11월, 대륙간컵 대회 대만과 쿠바의 경기를 꼽았다. 당시 3루심으로 나선 김씨는 쿠바 투수의 보크를 날카롭게 잡아냈다. 이 경기는 쿠바가 0-2로 앞서다가 대만의 4-2 역전승으로 끝났다. 흐름상 그의 보크 판정이 결정적이었고, 그는 뜻하지 않게 대만의 ‘영웅’이 됐다. “그땐 택시 기사도 알아보고, 음식점에 가도 서비스 음식도 주고 그랬죠. 주위에선 농담으로 귀국하지 말고 대만에서 살라고들 그랬죠. 그때 제 보크 판정은 정말 정확했다고 자부합니다.”
어느덧 대한야구협회 심판 서열 6번째인 그는 만 58살 정년까지 심판을 보면 딱 30년을 채우게 된다. 그는 “10년도 더 남았으니 언제 어느 때 ‘오심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며 “농협에서도, 심판으로서도 아무 탈 없이 정년을 채우는 게 가장 큰 소망”이라고 했다. 글·사진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깅형주씨는 평소 농협 하나로클럽의 서울 서대문점 부점장으로 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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