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 저주의 세계
엘지, 김감독 해임뒤 9시즌 연속 PS진출 실패
농구 SK도 서장훈 이적 뒤 성적부진 시달려
“선수들 지나치게 의식…경직된 플레이 나와”
엘지, 김감독 해임뒤 9시즌 연속 PS진출 실패
농구 SK도 서장훈 이적 뒤 성적부진 시달려
“선수들 지나치게 의식…경직된 플레이 나와”
저주. 입에 담기에도 섬뜩한 말이다. 아무리 비정한 승부의 세계라도 남에게 재앙이나 불행이 닥치라고 빌 리는 없다. 그런데 요즘 스포츠 세계에서 ‘저주’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한다.
■ 다시 맴도는 ‘김성근의 저주’ 프로야구 엘지(LG)는 올해도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했다. 9시즌 연속이다. 팬들 사이에선 “김성근 감독을 다시 모셔오자”는 말이 나온다. 일종의 ‘결자해지’ 해법이다. 엘지는 2001년 5월, 9승1무25패로 부진했던 이광은 감독을 경질하고 김성근 2군 감독에게 지휘봉을 맡겼다. 김 감독은 이듬해 엘지를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모두가 깜짝 놀랐다. 하지만 엘지 구단은 김 감독을 해임했다. 그 뒤 엘지는 ‘가을잔치’에 한번도 초대받지 못했다. 2003년부터 올해까지 6→6→6→8→5→8→7→6→5위를 했다.
엘지 관계자는 “기사와 누리꾼 댓글에 많이 등장하다 보니 선수들이 올해는 꼭 포스트시즌에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 아스널, 등번호 9번의 저주 박주영(26·아스널)은 대표팀과 AS모나코에서 줄곧 10번을 달았다. 하지만 아스널에선 간판 스트라이커인 로빈 판페르시가 10번을 달고 있다. 그래서 9번을 달았다. 그런데 아스널엔 ‘등번호 9번의 저주’가 있다. 1997년부터 14년 동안 6명의 선수가 9번을 달았다. 이들은 한결같이 부진과 부상에 시달렸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득점왕 다보르 슈케르는 22경기에서 8골에 그치며 아스널을 떠났고, ‘잉글랜드 공격의 10년을 책임질 선수’라던 프랜시스 제퍼스는 22경기에서 고작 4골을 넣은 뒤 사라졌다. 가장 최근에 9번을 단 크로아티아 국가대표 에두아르도 다실바는 2008년 왼발목이 부러져 한 시즌을 푹 쉬었다. 박주영은 이런 저주 이야기에 아랑곳하지 않는다. 하지만 올 시즌 이적해 아직 정규리그와 챔피언스리그에서 데뷔도 못한 처지여서 기분이 찜찜할 것 같다.
■ 프로농구에서는 서장훈의 저주? 프로농구 서울 에스케이(SK)는 한동안 ‘서장훈의 저주’에 시달렸다. 2002년 팀의 기둥 서장훈(37·현 창원 엘지)을 내보낸 뒤 5시즌 동안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6강 제조기’ 김진 감독이 지휘봉을 잡은 뒤 2007~2008 시즌에 저주의 사슬을 풀었지만, 이후 3차례 연속 플레이오프에 오르지 못하는 등 완전히 탈출하지 못했다. 이재호 에스케이 홍보팀장은 “서장훈과 안 좋게 헤어진 것도 아니었고 의미를 안 두려고 했지만 언론에 자꾸 나오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 ‘표지모델의 저주’ 원조는 따로 있다 대구세계육상대회 기간 동안 ‘데일리 프로그램’의 표지모델로 나온 선수들은 죽을 쒔다. 그런데 ‘표지모델의 저주’ 원조는 따로 있다. 미국의 스포츠전문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의 저주’다. 1954년 8월 창간호 표지를 장식한 밀워키 브레이브스 3루수 에디 매슈스는 모델 등장 뒤 손을 크게 다쳤다. 카레이서 팻 오코너는 1958년 5월26일 표지에 등장한 직후 다음 경기에서 첫 바퀴를 돌다가 숨졌다. 1961년 2월13일치엔 미국 여자 피겨대표팀을 특집으로 다뤘다. 그런데 표지에 등장한 유망주 로런스 오언을 비롯해 대표선수 전원이 체코세계선수권대회에 가다가 비행기 사고로 떼죽음을 당했다.
기영노 스포츠평론가는 “스포츠 세계에서 ‘저주’는 팬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하는 요소이지만 선수들은 죽을 맛일 것”이라며 “베이브 루스를 방출해 86년 동안이나 ‘밤비노(베이브 루스의 별명)의 저주’에 시달렸다가 2004년 우승했던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보여지듯 선수들이 지나치게 긴장하면 경직된 플레이가 나와 저주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분석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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